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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기도할 수 밖에 없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6.14 18:18
  •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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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멕시코에는 죽은 자의 날이 있다.  아즈택 인디오의 전통으로 저승의 문이 열리는 날.. 사람들은 해골 분장을 하며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별이 없는 날로 지낸다. 죽은 자를 불러내는 축제를 치르며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는 것일까, 죽음이 두려워서 오히려 이런 축제를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마리골드 주황색 꽃 이파리로 죽은 자가 올 길을 만든다니 참 서정적이기도 해라. 
 큰오빠의 갑자기 한 떠남으로 슬픔이 고여있는 웅덩이가 생겨나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가끔 오빠의 죽음이 편안하질 않았을까, 나도 그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무도 성가시게 하지 않고, 자신도 아프지 않고, 어느 날 어느 순간 홀홀이 떠나는 것, 안녕, 잘 있어, 인사를 못 해서 서운하긴 하지만, 모르지, 죽음 바로 곁에서 들을 길 없는 인사를 애절하게 말하는지도, 가슴 아파하는 자식들에게 그만, 그만해, 나 괜찮아 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산자는 들을 수 없는 언어.   


  며칠 전 조카의 결혼식에서 친척들을 만났다. 야외 결혼식장에서 전통 혼례식을 했다. 초록은 눈부셨고 예식은 흥미로웠다. 결혼식을 위한 등장인물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신랑 신부 가마를 드는 사람부터 그 가마를 인도하는 사람, 사회를 보는 무형문화재인 어르신과 그 사회를 풀어주는 사회자가 또 있었고, 신랑 신부의 예식을 돕기 위한 집사들과 전통공연, 내가 본 결혼식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등장했다. 뷔페 음식이었는데도 따로 커피 차가 있고 식권처럼 쿠폰을 나눠줬다. “솔과 다니엘이 쏩니다”. 친척들과 쿠폰으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가 들어선 지 이제 정말 노인 문제가 체화된다. 늙을 老를 자세히 보면 흙 화 되어간다는 뜻이 있다. 어디 깊은 섬나라에서는 어느 나이가 되면 그때부터 죽은 사람 취급을 한다고 했다. 살아 있으나 산사람처럼 여기지 않는다는 것, 이론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고려장이란 단어가 있고 일본에도 오바스테야마ㅡ 늙은 부모 버리는 풍습이 있다. ‘할머니는 운이 좋아. 눈이 오는 날에 나라야마에 갔다네’ 유명한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 나오는 노래. 오란, 그 할머니 나이가 일흔이다.


 일흔다섯의 사촌 언니가 아흔아홉의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다. 날마다 거의 외출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와 지내고 있다는 것, 오늘도 같이 사는 딸이 쉬는 날이라 어머니를 맡겨 두고 왔다는 것, 나이가 나이니만큼 약한 치매기가 있으신데 그래도 화장실에 가실 수 있으니 너무나 고맙다는 것, 딸이라선지 어머니에 대한 표현이 부드럽다. 사촌 남동생도 아흔 넘은 엄마를 모시게 되었다. 혼자 사시다가 원하던 장남과 함께 살게 된 것, 큰아들네로 가시면서 살고 있던 자그마한 빌라를 며느리에게 넘겨주었다. 이남 일녀 중 장남이 가장 잘 살았는데 삿된 표현으로 큰아들에게 몰빵을 한 것이다. 겨우 육 개월여 지난 후부터 자신들이 어머니 보다 먼저 죽겠다는 말을 했다. 와이프는? 물으니 온 얼굴에 미묘한 힘을 주더니 말한다. 누군가 보초를 서야지요. 일 년이 넘는데 경기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어요. 충분히 이해는 간다. 어른이 계시고 안 계시고의 차이를 나도 무수히 느껴 봤기 때문이다. 돈이 사람 노릇 한다는 말이 있다. 돈에 후하면 설령 못된 사람일지라도 사람으로 여김을 받는다는 말이다. 돈을 벌면 없던 일가도 생긴다는 재미있는 말도 생각나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모개 흥정이라도 해보자. 그 빌라가 삼억 정도라면서, 대강 십 년을 모시고 산다고 치면 너 삼백만 원짜리 월급쟁이네, 어머니 모시는 직장생활로 생각해봐. 직장생활이 쉽던가,”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일반화할 수 없는, 적절치 못한 비유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이나 정, 긍휼이 안되면 돈으로라도 해석을 해야지 않겠는가, 


 아무리 많은 재산과 권력이 있어도 늙음은 찾아오고 그 늙음이 빚어낸 배신은 참혹해서 세익스피어의 리어왕도 미쳐서 죽었다. 늙음은 이미 내게도 왕림하셨다. 딸에게 이미 여러 번 말했다. 엄마 아빠 둘이 살아 있을 때는 서로가 책임지지만 혼자 되었을 때 치매가 오면 망설이지 말고 시설로 보내라,    
  부모의 늙음을 보면서 나도 금방 저리되리, 배우는 사람에게는 긍휼이 있을 것이고 배우지 못하면 성찰이 없는 사람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이지만 우리 모두 생명이 길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늙음과 죽음 거기 어디에도 내 뜻은 없다. 그저 늙어가고 어느 때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한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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