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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리차드 포스터(6)기도로의 초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6.01 23:10
  • 호수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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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포스터 교수

(할 수 없는 만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기도하라 - 돔 채프만(Dom Chapman)

리차드 포스터(Azusa Pacific University 신학과) 교수는 미국 LA에서 “Renovare”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역들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영적 훈련과 성장”, “돈과 X 권력”이란 책의 저자로도 한국에 널리 소개된 바 있다.

단순한 기도(3)

자기를 ‘대머리’라고 놀리던 아이들에 대하여 앙갚음을 한 엘리사를 생각해 보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왕하2:24). 시편 기자는 대적들의 아이들이 끔찍하게 죽은 것을 기뻐하고 있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시137:9). 반면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기도의 한복판에는 그 사람들의 가장 고상하고 숭고한 기도의 내용들도 있다.

불순종하고 완고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세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으시오면 원하건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 또한 자기를 놀리던 아이들을 저주해서 죽게 했던 엘리사가 하루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수넴 여인을 만나 그에게 자비를 베풀며 예언한 것을 생각해 보라. “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왕하4:16).

또 앞서 언급한 시편 기자가 여호와께 마음으로 부르짖어 이르기를 “내가 주의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119:97). 라고 한 것을 생각해 보라. 단순한 기도에는 좋은 것, 나쁜 것, 그리고 흉한 것, 모두가 섞여 있다. 단순한 기도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일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 아뢰는 것이다. 그 기도에는 가식이 조금도 없다. 실제 우리의 모습보다 더 거룩하고, 더 순결하고, 더 성스러운 체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로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는다(요일3:20). 단순한 기도는 초보적인 기도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기도지만 계속해서 우리는 그 기도를 드린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단순한 기도이다. 존달림플(John Dalrymple)의 지적은 옳은 말이다. 우리는 이런 기도 이상은 드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 부족함과 필요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가장 기본적인 기도를 멸시하고 싶은 유혹이 있다. 특히 ‘현학적인’ 사람들이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보다 ‘성숙한 기도를 드리겠다는 소망으로 단순한 기도를 건너뛰려고 애쓴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이기적인 요구의 기도를 경멸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단순한 기도는, 그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뛰어넘는 길은 그것을 피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통과하는 것뿐이다.

단순한 기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십중팔구는 그들은 거의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도에 대해서 논의해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진심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 상태는 온전히 드러나게 된다. 기도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기 시작할 때가 바로 그때이다. 기도의 진기한 경험이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순한 기도를 설명했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하다. 우리는 앞서 언급한 서론적인 사실 외에 이론을 뛰어넘어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단순한 기도를 실제로 어떻게 드릴 것인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시작하면 된다. 가정과 직장에서 이웃 사람들과 친구들, 더불어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너무 가볍게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실제 적으로 알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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