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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쥐똥나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6.01 14:56
  • 호수 586
  • 댓글 1
   위 영  (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나로서는 불가항력이다. 유혹하는 그대에게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매해 이맘때면 이루어지는 일이다. 살짝 망설이기도 하고 주변 눈치를 보기도 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길목에서 그대를 몇 송이 꺾을 수밖에, 부리나케 집으로 와 아주 작은 키의 커피잔에 그대를 꽂는다. 어찌나 가느다란 가지에 피어나는지 그리고 조그마한지, 혼자 서기도 어려워 커피잔에 기대서는 그대. 그러나 그런 작은 외양과는 상이하게 큰 힘을 지녔다. 발칸의 장미에서 향수를 추출할 때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새벽 두 시 즈음이라고 한다. 상당히 유의미하지 않은가.


 그대 몇 송이로 인해 내 방은 향기의 세상이 된다. 향기는 꽃들의 언어이다. 은은한 그대로 인해 사방 데가 청결해지는 느낌. 산만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침착해진다. 그래, 좋네, 좋아, 뭘 더 바래, 너그러운 마음까지 강림하신다.  그대는 나의 절친한 이웃이다. 동네 집들이나 가까운 사재공원, 정발산 주변 길은 아예 그대로 주욱 돌아가며 심겨있다. 굵은 선의 자태로 존재하며 경계선을 짓는다. 여기부터 우리 집, 내 땅이여, 여긴 들어가지마,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딱 맞는 나무라고나 할까, 그대는 거의 언제나 집과 길, 길과 도로, 그리고 산과 길의 경계를 나누는 곳에 존재한다. 오죽하면 어느 나무학자는 그대를 향해 생울타리로 쓰이기 위해 태어난 나무라고 했겠는가, 아, 이발하지 않는 숲속의 그대는 제외하자.  


 기실 그대는 매우 평범한 나무이다. 평범해서 많은데도 평소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파리 생김새도 작고 동그랗고 그 흔한 톱날도 없다. 사람들 탓이기도 하지만 수형도 그저 그렇다. 이름도 처음엔 살짝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아무리 열매가 검게(북한에서는 검은 알 나무라 한다) 익는다고 쥐똥을 연상했을까, 멋에 전혀 관심이 없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나무, 나무 사회의 민초라고나 할까, 그대는 추위와 더위에 의연하고 자리에 까탈을 부리지 않고 잘 자란다. 비록 타고난 덩치는 작지만, 적응력은 높다. 
 <쥐똥나무는/사람들 이기심 ㅤㄸㅒㅤ문에/평생을 울타리로 살아도/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정원사의 가위에 수없이 잘리고 깎여도/누구도 탓하지 않는다/다만 여름 길목마다/보란 듯 하얗게 꽃을 피워/맑고 그윽한 향기로/온몸으로 세웠던/안과 밖의 경계를 지울 뿐/쥐똥나무 꽃/ 백승훈>
 우리 동네 호수공원의 장미원을 잠깐 거닐었다. 장미의 세상이었다. 형형색색의 장미들이 한도 없이 피어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답고 커다란 장미꽃들이 피어나 있는데도 향기가 별로 없었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식물 입장에서는 갖은 색소를 조합해 화려한 색상의 꽃을 피우는 것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저렇게 굵고 탐스럽게, 화려한 색을 내는 데 힘을 다 써버렸으니 무슨 향기를 지닐 힘이 있겠는가, 
 향기 없는 장미들 사이로 민초의 향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아한 향기가 다가왔으니 쥐똥나무 꽃 바로 그대의 향기였다. 향수를 위해 살인조차 불사하는 그루누이가 향수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냄새를 처음 맡을 때에도 쥐똥나무 그대가 있었다. 
 화려한 봄꽃들이 다 지고 나면 나무꽃 세상이 열린다. 초여름의 이 무렵에 피어나는 나무꽃들은 거의가 다 흰 꽃들이다. 찔레·조팝나무·이팝나무·산딸나무·함박꽃나무가 그렇다. 물론 그대 쥐똥나무도 여기 한자리를 차지한다. 꽃의 존재 이유는 하나다. 자식! 지혜로운 그대는 색 대신 향기를 택한 것이다. 외양보다는 내적 깊음의 향기로 수분 매개체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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