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3.9.27 수 13:22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비밀의 왕국 가야1세기 가야는 기독교왕국이었다 ⑨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5.26 11:28
  • 호수 585
  • 댓글 0
이용봉 목사(기성 진주중앙교회 원로)

도마는 누구인가?

순서가 바뀐 것이 작은 차이라고 그저 넘겨 볼 수도 있겠으나 보편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형제들의 이름을 기록할 때 순서 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곧 이 두 사람의 구분이 명확했다면 누구나 그 서열대로 기록하였을 것이지만 명확하지 않았기에 두 기자는 혼동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몬과 유다가 쌍둥이였을 것이라는 추축이 가능해진다. 곧 마가는 유다와 시몬이라고 적은 반면에 마태는 시몬과 유다로 적었기 때문이다. 마가는 유다가 형이라고 했고 마태는 시몬이 형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들 두 사람이 쌍둥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누가 진짜 형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마태의 기록이 더 정확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마태는 세리였고 세금을 거두는 일을 했기에 당시 예수님의 가정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로써 도마는 예수그리스도와 쌍둥이가 아니라 셋째와 넷째가 쌍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은 왜 동생들이 넷이나 있음에도 도마만 제자의 반열에 들어갔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서는 셋째와 넷째가 쌍둥이로 태어나자 엄마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큰형이었던 예수님은 그중에 한 동생인 유다를 맡아서 데리고 다녔을 것이라고 본다. 곧 유다는 예수님 곁에서 따르는 동생이었기에 그를 부를 때 유다라고 하기보다는 도마라고 불렀을 것이고 자라면서도 유다 도마는 형의 곁을 떠나지 않고 늘 함께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아 유다가 제자의 반열에 들게 되었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유다를 도마라고 부름에 따라 유다라고 하기보다 도마라는 이름이 더욱 친근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도마는 예수님의 육신의 셋째 또는 넷째 동생이었으며 그것도 쌍둥이 동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마의 이름이 후일에도 변하지 않고 계속 도마라고 불렸던 것은 인도의 교회들이 자신들은 도마에로부터 전도 받은 도마교인 이라는 데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변함없이 도마로 불린 것은 아마도 예수님을 판 사람이 가롯 유다였기 때문에 도마 자신도 그 이름을 쓰는 것을 싫어했을 것이고 그래서 자신을 도마로 불러 달라고 했을 것이다.

                               위 사진은 헤롯왕을 묘사한 것임.

헤롯의 아버지는 안티파트로스이다. 안티파트로스는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으로,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힐카누스가 에돔을 평정하고 에돔인들을 유대교로 개종시킨 가운데 이 당시 유대교로 개종했던 가문이다. 이런 가문이 유다의 분봉  왕이 되어 유다의 땅을 다스리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건에 얽혀져 있었다.

유다는 알렉산더 대왕이 젊어서 죽자 거대한 헬라제국은 네 개의 왕조로 나누어졌고 그중 하나인 셀레우코스 왕조에 속하게 되었다. 기원전 168년경에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 예배를 제우스 숭배로 대체하려 하자 유대인들은 마카베오가(家)의 지휘 아래 반란을 일으켰다. 이로써 하스몬가라고도 하는 마카베오가는 BC142년부터 유대를 통치하였다.

BC66년경 이 하스몬가에 이상징후가 일어나게 된다. 곧 하스몬 왕가의 왕자이자 서로 형제간인 히르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왕위를 두고 다툼을 벌인 것이다. 이 사이를 이간질하며 문제를 일으키게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헤롯의 아버지인 안티파트로스이다. 안티파트로스는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 키프로스와 혼인해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은 파사엘이었고 둘째 아들이 바로 헤롯이였다.

두 왕자인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형인 대사제장 힐카누스 2세와 왕위 다툼을 벌인 끝에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왕이 되고 힐카누스 2세는 대제사장의 직을 유지하기로 합의를 보아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보자 안티파트로스 자신의 입지에 불안감을 느끼고 형인 힐카누스 2세를 꼬드겨서 아리스토불로스 2세를 제거하고 유일무이한 왕과 대제사장을 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처가인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2세에게 5만 병력을 청하여 아리스토불로스 2세를 공격하게 되자 동생인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은 300달란트를 들고 다마스커스로 가서 폼페이우스의 부장인 스카우루스를 데리고 왔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