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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포스터(5)기도로의 초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5.26 01:07
  • 호수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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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포스터

(할 수 없는 만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기도하라 - 돔 채프만 (Dom Chapman)

리차드 포스터(Azusa Pacific University 신학과)교수는 미국 LA에서 “Renovare”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역들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영적 훈련과 성장”, “돈과 X 권력”이란 책의 저자로도 한국에 널리 소개된 바 있다.

단순한 기도(2)

모든 내적인 영혼의 추구가 실제로는 나의 기도 능력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문제의 진실은, 우리는 모두 복잡하게 얽혀있는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타적이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며, 긍휼을 베풀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며, 사랑스럽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복잡 미묘한 동기로 우리는 기도한다.

솔직히 말해서 영원의 이편에서는 선과 악을 절대로 구분하지 못하며 순수한 것들과 불순한 것들을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깨닫게 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이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납하실 만큼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꼭 현명하거나 순수하거나 믿음이 충만하거나 어떤 것을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개념이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은혜로 살아가며 또한 은혜로 기도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신 것은 기도는 어린아이들이 부모님께 나아오는 것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우리의 자녀들이 맹렬히 요구하고 우리에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종종 우리는 그들의 요구가 이기적이거나 저속하여서 슬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들의 동기가 어찌 되었든 그들이 우리에게 나온다는 그 자체가 단순히 기쁜 것이다.

기도의 문제도 그러하다. 우리가 올바르게 기도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순수한 동기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거나 매우 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제쳐두고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실제로 기도하는 바로 그 행위 속에서 즉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이 문제들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며 또 우리의 기도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나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나쁜 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초보적인 기도의 형태인 단순한 기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기도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숨김없이 하나님께 내놓는 기도이다.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 서 있는 아이들처럼 우리의 마음을 열고 아무런 가식 없이 우리의 관심을 나누고 간청할 뿐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직장동료나 이웃 사람들로 인해서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는 좋은 날씨나 먹을 양식과 건강 따위를 달라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단순한 기도는 그 초점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필요와 욕구와 관심이 우리의 기도를 지배한다. 우리의 기도에는 수많은 교만, 자만, 허영, 가식, 거만, 그리고 전반적으로 이기주의가 가득 차 있다. 물론 거기에는 아량, 관대함, 이타심, 그리고 보편적인 호의도 있다. 우리는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범죄 한다. 종종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일어서서 다시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기도한다. 다시 하나님을 따르려고 애쓴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우리의 교만함과 방종함에 굴복하고 만다. 하지만 염려하지 말라 다시 자백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사실 단순한 기도는 때때로 다시 시작하는 기도라고 불린다.

단순한 기도는 성경에 나오는 기도 중에서 가장 흔한 기도이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 가운데 고상하거나 아량이 넓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옛날 목이 곧은 백성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불평하던 모세를 생각해 보라.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 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 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 나이까?(민수기 11장 11~12절)”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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