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3.9.27 수 13:22
상단여백
HOME 신학 영성
<기획 연재> 리차드 포스터 (4)기도로의 초대
  • 기독교헤럴드 편집국
  • 승인 2023.05.19 02:05
  • 호수 584
  • 댓글 0

(할 수 없는 만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기도하라 - 돔 채프만 (Dom Chapman)

리차드 포스터 교수

리차드 포스터(Azusa Pacific University 신학과)교수는 미국 LA에서 “Renovare”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역들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영적 훈련과 성장”, “돈과 X 권력”이란 책의 저자로도 한국에 널리 소개된 바 있다.

 

안으로 향하는 기도

기도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커다란 은혜이다. 우리의 삶이 사랑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 양선과 충성, 온유와 절제로 인도함을 받도록 길을 제공해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선하신가! 안으로 향하는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 내면이 변화되지 않고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려는 위로 향한 기도가 오히려 우리를 짓누르고 또 밖으로 향하는 사역이 우리를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한번은 어떤 제자가 아바 요셉(Abba Joseph)에게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가능한 한 계율도 지키고 금식도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마음속에서 모든 악한 생각을 제거하고 모든 나쁜 의도들도 없애버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러자 아바 요셉은 일어서서 두 손을 하늘로 향하여 뻗었다. 그의 손가락은 마치 열 개의 등불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왜 자신을 불 속에 넣어 완전히 변화 받지 않는가?”라고요.

 

단순한 기도(1)

우리는 오늘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면서도 기도를 회피한다. 기도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기도를 싫어한다. 기도는 해야만 하는 것이고 또 하고 싶기도 하지만, 뭔지 모르게 우리와 실제로 기도하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 고통을 체험한다. 무엇이 우리를 기도하지 못하도록 막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지 못한다. 물론 우리는 해야 할 일들과 가정에서의 본분 때문에 분주하게 생활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쁘다고 해서 먹지 않거나 잠자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데에는 더 깊고 중요한 이유가 있다. 실제로 기도를 막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때가 되면 그 모든 것을 살펴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한가지 요인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현대의 고학력자들에게 거의 보편적인 것으로서 기도하기 위해 기도에 모든 것을 먼저 완전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도에 따르는 철학적인 문제들을 연구해야 하고 기도의 위대한 전승을 더 잘 이해하는 등 선행되어야 하는 등 선행되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거나 또 그런 문제들을 다룰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출발점이 잘못된 것이다. 마치 마차를 말 앞에 메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우리가 기도를 대수학이나 자동차 공학처럼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는 점이다. 만약 우리의 생각대로라면 우리는 높은 위치에 앉아서 그것을 능숙하게 다루겠지만, 막상 기도하게 되면 오히려 우리는 낮아지고 통제권을 조용히 넘겨주고 무능한 자처럼 된다. 에밀리 그리핀(Emilie Criffin)이라는 사람은 “기도하는 것은 기꺼이 소박해지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진실로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내 기도의 동기가 바르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는 그룹 기도를 할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기도했던 내용들을 되새기며 스스로 물어보았다. 나의 기도가 얼마나 어리석어 자기중심인지 깨달았고, 더 이상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기도의 동기가 순수해질 때까지 절대로 기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나의 기도의 동기가 순수해질 때까지 절대로 기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편집국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 편집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