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목사 (임진각순례자의교회 담임)

살아가기 힘들 때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강원도 탄광 마을에 사는 한 평범한 광원인 김장순으로 잡지사 기자 시절에 취재를 위해 만났던 사람이다. 농부들의 전형적인 얼굴, 순박하고 순연한, 마치 봄날의 따스한 밭흙 같은 인상을 풍기는 사람으로, 광업소 소장의 허락을 받아 지하 막장까지 그를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700미터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갱차를 타고 수평으로 1200미터까지 가서 갱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갱 양편으로는 탄가루가 섞인 검은 지하수가 급히 흘러갔다. 갱 바닥은 탄가루와 뒤범벅이 돼 장화 신은 발이 푹푹 빠졌다. 그렇게 한 30여 분쯤 걸었을까. 더 이상 갱도가 없는 곳이 나왔다. 두세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좁은 갱 속을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들어간 곳이 지하 막장이었다. 

“막장에서는 잠을 못 자게 합니더. 담배도 못 피우게 하지예. 그런데 어떤 때는 앉은 채로 깜빡 졸 때도 있습니더.” 나는 곡괭이질을 하는 중간 중간에 한마디씩 던지는 그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를 취재한다는 일이 나로서는 너무나 건방지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막장을 나온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갱 속 지하 사무실에 보관해둔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어둠 속에서 손도 씻지 않고 작업복도 입은 채였다. 밥은 껄끄러워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탄가루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탄가루를 먹는다는 생각에 통 젓가락질을 하기가 싫었다. 그를 탄광촌으로 내몬 고향의 농협빚은 이제 거의 다 갚았으며, 한두 해만 더 일하면 어느 정도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게 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젖소 몇 마리라도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 등은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을 아리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의 이야기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는 그의 소원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질문 끝에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건 땅 위에 직업을 갖는 거지예.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잘 모릅니더.” 나는 몇 점 꽁보리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그만 이 말을 듣고는 목이 꽉 메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땅 위의 직업’ 갖기를 소원하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 말은 하나의 커다란 깨우침이었다. 

‘땅위의 직업’이라……, 이 한마디에 마음 가득 진한 아려움이 다가옵니다. 땅위의 직업을 갖는 것이 소원인 것처럼 절실함으로 살아가는 교우 여러분들이 만들어준 목자의 삶을 더욱 소중히 생각지 못했던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도 머리를 숙입니다. 그리고 막장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성실함으로 살아가며 소망과 희망을 품은 김장순씨도 힘차게 살아가는데, 영혼의 소망이 되신 주님을 품은 우리는 더욱 부지런함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를 말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주어진 헌신의 자리도 특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성실함으로 기쁨을 누리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해 봅니다. 또한 땅위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일의 터전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영혼을 향한 사명에서도 부끄럽지 않도록 충성된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오늘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는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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