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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세상 (27)디저털 좀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4.27 11:43
  • 호수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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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연 교수 (숭실대학교)

하루가 멀다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단어들이 여러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단어를 모르면 자칫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세상이 그리 빨리 돌아가지만, 그 톱니바퀴에 쫓아가지 못해서 늘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 마저 든다.
  요즘 하루에도 몇 개씩 여러 의미를 가지는 신조어들이 등장한다. 그 신조어를 들여다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것 같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삶의 대부분의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전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다. 이전에는 그래도 지하철을 오래 타고 가는 사람들은 책 읽는 모습도 보이고, 간혹 성경책을 읽으시는 어르신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광경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스마트폰은 아이들이 태어나자 마자 부모 다음으로 접하는 세상의 물건일 것이다. 너도나도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익숙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세대’들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니 어린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더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것을 간혹 보게 된다. 스마트폰은 생활의 필수품이지만 우리는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스마트폰의 사용은 그 만큼 사람들에게 온라인에 머무는 시간을 오래 붙든다. 사람들은 온라인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SNS로 소통한다. 얼굴 한번도 못본 이들과도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소통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트그램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댓글을 달고 여러 다양한 정보를 얻어간다. 간편하고 편리하게 그리고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온라인상의 여러 정보들은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이긴 해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이라고 해서 편한 것만 다가 아니다. 편리하고 손쉽게 접할수록 부정적인 면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동전의 양면이 있는 것처럼 용이하고 이롭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존재하는 곳이 온라인 인터넷상의 공간이다.


  인터넷 공간은 익명으로 얼굴을 보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의 무분별한 댓글은 당사자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요즘 대형 포탈에서는 실명으로 가입을 한 후, 댓글을 달 수 있는 시스템도 도입한 것은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온라인 사용이 급증한 현대인들에게서 등장한 신조어 가운데 디지털 좀비(Digital Zombie)라는 말이 있다. 이 용어는 백과사전에 디지털 기계에 풀 빠져 외부와 단절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좀비라는 말은 익히 들어서 다 알고 있다. 몸은 있으나 의식이 없는 존재로서 영화에서 주로 사람들의 시체로 등장하는 다소 거북스러운 형태로 나오는 캐릭터이다. 디지털 좀비는 말 그대로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오직 디지털 세계에만 빠져서 일상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간혹 내가 혹시 디지털 중독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다.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해지는 소위 ‘스마트폰 중독’은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우리도 지나치게 디지털 기계와 스마트폰의 편리함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외부세계보다는 온라인상에서의 경험이 더욱 많은 건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온라인상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들은 익명의 타자들이다. 우리가 만나서 얼굴을 보면서 소통하는 의미와는 다른 형태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가 ‘마주대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소통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소통이 그립기만 하다. 갈수록 사회는 더욱 비대면 시스템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늘 얼굴을 마주보면서 ‘이웃사촌’이라는 소중한 전통과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웃사촌, 늘 얼굴을 보면서 안부를 묻는 것, 그 소중한 삶의 의미와 존재론적 가치가 서서히 식어질까봐 염려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일마다 얼굴을 마주보는 공동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고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는 바로 ‘이웃사촌’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소중한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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