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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4)신앙의 골다공증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4.13 21:38
  • 호수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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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나인성이라는 마을에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메고 나가는 운구 행렬을 멈춰 세우신 주님은 죽어 시체 된 젊은 아들을 살려 어머니에게 돌려 줍니다. 동기는 아들 잃은 어미의 눈물을 씻어 주시려는 의도입니다. 오늘날도 자녀들을 위한 어머니의 눈물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한국 사람 중에 교회에 가 보지 않은 분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직 삼광교회일 때, 우리 교회만 해도 수많은 어린이, 젊은이들이 교회를 드나들었습니다. 자라서 학업을 마치고, 대부분은 여기를 떠나 각각 삶의 터전으로 흩어 졌습니다.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3, 40도 되고 50도 되었습니다. 죽어 나가는 과부 아들의 장례 행렬을 보며 이 부활의 아침에 그들의 영혼은 안녕하신지 묻고 있습니다. 

그 중 몇몇은 수도권의 감성적 메시지를 전하는 대형 교회의 일원이 되어 자랑스럽게 신앙을 이어갑니다. 반면 언뜻 둘러만 보아도 나머지 많은 자녀들은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습니다. 끝까지 신앙을 지켜내지 못한 그들의 속내가 못내 안타깝습니다. 유품처럼 ‘학교 다닐 때 까지는 신앙생활 잘 했어요’ 라는 말을 남기고 표표히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부모님들의 지지와 동의 속에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자녀들이 자랄 때 신앙의 절대성을 미리 포기 해준 까닭입니다. ‘주일 성수’ 같은 신앙의 절대 기준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시험 기간이라 공부 해야 해서’ 주일에 교회 가는 대신 학원이나 독서실로 내몰았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일자리를 정한 후에는 그 자랑스러운 자녀들의 사회 활동을 마구마구 지지하고 후원합니다. 그 자랑스러운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 세상에 집중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그리도 대견하여 “우리 애들은 바빠서 교회 못 와요” 라는 변명을 상표처럼 달아 자녀들의 신앙을 막아선 것도 부모님들입니다. 벌어 먹고사느라 지치고 곤한 자녀들이 한 주일에 하루를 늘어지게 쉬면 좋겠다는 부모님 마음은 인지상정이긴 합니다. 그 덕분에 자녀들이 자랑스러운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각각의 영역에서 부모님들의 자랑이 될 만한 역할들을 해 냅니다. 

반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신앙을 잃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버렸습니다. 죽음은 가혹해서 산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하필이면 남편도 없이 사는 여인의 독자에게 죽음이 왔을까요! 영혼의 죽음도 방불하여 불신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사망에 이릅니다. 과거 한 때, 학생회장을 지낸 사람도, 청년회장을 지낸 사람도 교회를 떠나면 그 자랑스런 이름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죽음에 이릅니다. 그 부모의 형편이 자녀의 영적 죽음에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결단하고 신앙을 포기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부모 슬하에 있을 때부터 절대 신앙을 포기하고 한 번 두 번 주일 예배를 세상사에 양보하는 등 세상사에 우선권을 두는 동안 ‘신앙의 골다공증’이 서서히 진행 되어 왔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인생의 전환기, 일테면 졸업, 입대, 취업, 이사, 결혼의 과정에서 그간 진행된 골다공증으로 인해 신앙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언젠가 다시 교회로, 하나님께도 돌아가야 할 막연한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다 지난 몇 년간 그들의 회귀 본능 자체도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죽음의 장례 행렬은 더 처연해졌습니다. 가혹하지만 명확하게 표현해서 불신은 죽음이니 마구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밖 세상은 나인성처럼 죽은 영혼들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떠들썩합니다. 불신의 삶을 사는 자녀들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다행히 지나시던 예수님을 만난 나인성의 청년은 부활합니다. 내 자녀의 영혼과 신앙이 살아 날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부활 해야 가정과 교회, 나라의 미래가 부활할 것이거든요. 

나인성 청년을 살려 낸 것은 주님이 그 장례 행렬을 멈춰 세워 주신 덕분입니다. 어머니의 사무친 눈물을 보신 까닭입니다. 불신으로 죽어 나가는 자녀들에게 부모님들은 결정권을 다 내어 주었습니다. 권면의 힘도 없습니다. 그들이 자라서 스스로 결정할 충분한 권리를 가졌습니다. 그들이 판단하고 그들이 결정합니다. 부모의 신앙 권면은 잔소리로 전락했습니다. 

진정 그들의 장례 행렬을 멈춰 세울 길이 없을까요? 성경의 답을 알려드리면 다름 아닌 부모님의 애절한 마음, 그 마음에서 돋는 처절한 눈물의 기도입니다. 

인류 역사 이래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는 장례 행렬을 멈춰 세우는 힘은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움직이는 동인은 오직 부모님의 눈물 뿐임을 이 부활절에 되새깁시다. 자녀들의 신앙 부활은 거기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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