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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의 BOOK -LIFE탐서의 즐거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3.22 16:56
  • 호수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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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임진각순례자의 교회 담임)

윤성근 님의 『探書(탐서)의 즐거움』(출판:모요사)에서 일부를 발췌해 보았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외국문학에 대한 번역 문제가 시끄럽다. 발단은 ‘이정서’라고 하는 새롭게 등장한 번역가의 도발이었다. 우리나라 프랑스 문학계의 귄위자인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카뮈의 “이방인” 번역서에 오류가 많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오역한 부분이 없진 않겠지만 “지금껏 읽은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은 엉터리이며 독자들은 속은 것이다”라는 말은 문학계는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이방인"의 첫 문장인

 “Aujoird'hui, maman est morte”는 원문의 'Maman'을 ‘엄마’로 할 것인가 ‘어머니’로 할 것인가, 또 그 뒤에 이어지는 단어를 ‘죽었다’로 할 것인지 ‘돌아가셨다’ 혹은 ‘운명하셨다’로 표현할 것인지를 두고 적지 않은 번역가들이 고민에 빠졌다. 이정서는 이 문장을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고 번역한 김화영 교수의 번역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 엄가가 돌아가셨다”라고 번역했고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살려 쓰려면 ‘죽었다’보다는 ‘돌아가셨다’가 옳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워낙 논란이 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이정서가 번역한 “이방인”을 읽어봤다. 그리고 곧이어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을 읽어봐야 했을까? 하지만 어쩐지 삐딱한 마음이 생겨서 그렇게 비교하며 읽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 대신 1950년대 초반에 “이방인”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번역한 이휘영 교수의 작품을 읽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이방인”을 읽어보아도 심지어 1950년대 판본을 읽으면서도 충분히 좋은 문장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교회에 이단이 들어오면 성결교회인이든 장로교인이든

                            그것은 안된다고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세 번역본은 각기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출판계에서 논쟁의 주제가 되었을지라도 독자 편에서 보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 원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문장을 번역함에 있어 단어의 선택은 달랐지만 작가가 주고자 하는 맥락에는 충실했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설교나 성경을 통해 삶을 해석하고 주님의 뜻을 발견하지만 다른 사람을 평가하거나 성경의 내용을 획일화 해버리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원문 TEXT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상황 CONTEXT는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해석이 참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이단은 무엇일까? 맥락 안에 있는 해석이 아니라 본질에서 벗어난 해석 혹은 오용을 사용하며 정당화 한다. 변할 수 없는 텍스트인 성경마저도 더하거나 빼버린다. 이런 방법은 항상 기독교 신앙을 위협해 왔고 교회라는 이름하에 교회 아닌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요즘 나라를 위한 염려가 많다. 보수 혹은 진보로 표명되며 각기 국가를 위한 표현을 달리하고 있다. 더불어 사회가 더욱 혼란스럽다. 본질에서 벗어난 맥락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근본 아래에서 정치도 외교도 이루어지고 또 이를 해석하고 지지하는 국민의 표현도 이루어져야 한다. 마치 'maman'를 “엄마”로 아니면 “어머니”로 해석 할지와 같은 방식인데 엄마나 어머니와 같이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일본이 식민지 침탈을 했던 것은 역사이고 팩트이다. 이 근본 맥락에서 벗어나면 안되며 그것을 벗어났다면 내가 진보인든 보수이든 그것은 안된다고 해야 한다. 교회에 근본을 벗어난 이단이 들어오면 내가 성결교회인이든 장로교인이든 그것은 안된다고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거리 어딘가를 걷다가 우연이라도 들어간 곳이 한적한 예배당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켠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말씀을 읽으며 조용히 성도와 나라를 위해 머리를 숙이고 싶다. 이런 내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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