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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15)학살 배경과 두암교회 순교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3.15 16:33
  • 호수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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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은 목사

그들이 용채에게 운동화를 사오라고 시킨 것은 유인이었다. 개다리라는 다리에 이르자 한 놈이 용채를 다리 밑으로 끌고 가 총을 쏜 것이다. 소식을 들은 용은이 현장으로 나왔다. “ 용채야, 용채야...이 형 때문에...흑흑” 그런데 용채가 살아 움직였다. 총알이 목을 관통했으나 다행히 기도를 피해 갔다. 용은은 일단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용은은 수건으로 구멍 난 곳을 막고 용채를 둘러업었다. 그리고 십여 리를 걸어 정읍 읍내 외삼촌 집으로 피신했다. 무슨 힘으로 그 먼 길을 달리다시피 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 용은은 외삼촌 집에서 응급조치했다.

“용채야, 제발 죽지만 말아라. 하나님, 용채를 살려 주십시오. 제가 죽어야 했습니다.” 용은은 외삼촌이 구해준 자전거에 용채를 태웠다. 힘이 없는 용채의 몸을 끈으로 자기 몸과 묶어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용은은 고부리라는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해 일단 먼 친척이 사는 그곳으로 이동했다. 용은은 자전거로 30여 리 길을 낮에 이동해 고부리에 닿았다. 한나절이 걸렸다. 그렇게 친척 헛간 땅을 파고 그 위로 나뭇조각을 댄 후 재를 뿌려 덮은 후 숨어 지내길 몇 날 며칠. 다행히 용채의 총상 자리가 조금씩 아물고 있었다. 친척 아주머니가 준 쑥이 효과를 보는 듯했다.

한데 친척 부부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 가더니 떠나 주었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집도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고구마 등으로 연명하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용채만 두고 갈 수도 없었다. 밤이면 좌익들이 내려와 각 가정을 뒤지며 보급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먹을 것이며, 입을 것 등을 마구잡이로 뺏어갔다. 반동분자를 숨기고 있다는 명분으로 여기저기 뒤지는 방식이었다. 아주머니가 용은에게 말했다. “아재, 아재 동상은 우리가 어떻게라도 해볼 테니 아재는 떠났으면 좋겠소. 우리가 불안해서 못 살겠단 말이오.” 용은은 동생에게 꼭 지켜내 주리라고 약속하고 떠났다.

‘이제는 총을 들어야겠구나. 목회자인 내가 총을 들어야겠구나...’ 그는 그 길로 정읍으로 들어가 자위대를 조직했다. 빨치산들의 만행에 치를 떨던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용기 내어 맞서 싸우자고 외치지 않아 마음속에만 담아 두고 있었다. 치안대를 조직해서 경찰과 합세하여 빨치산들과 대결했다. 한번은 큰 전투를 치렀다. 용은의 자위대와 경찰은 민·경 합동작전을 벌여 동학농민운동의 발상이 옛 고부 읍내를 쳤다. 민경군이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자 빨치산들은 우익 인사 30여 명을 학살했다. 그 전투를 통해 빼앗겼던 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양쪽 다 큰 희생을 치렀다.

용은은 총을 든 목사였다. 어렵게 고부리를 접수하고 친척 집 뒤쪽 뽕나무밭에 숨어 있던 동생 용채를 찾았다. 다시 동생을 찾았을 때 그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있었다. 형제는 껴안고 울었다. 그때 용은의 동선을 뒤쫓던 좌익들이 급습하였다. 김용은 목사는 그날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내가 총을 들고 일어서려 하자, 동생이 죽을힘을 다해 내 혁대를 잡고 주저앉혔어요. 그리고 내 혁대를 풀어 자신이 차더라고요. ‘형님, 형님은 사셔야 합니다. 어머니를 지키시고 형제들을 지키십시오. 형님 천국에서 곧 만날 겁니다.’ 이러면서 뽕나무 가지를 엮어 저를 안전하게 숨기고 나갔어요. 손을 들었는데도 동생은 총탄에 죽고 말았어요. 잔학한 놈들이었죠.” 용은은 기적적으로 살았다. 동생이 엮어 놓고 간 뽕나무 가지가 그를 숨겨 살 수 있었다. 스물아홉, 맑은 눈을 가졌던 동생 김용채는 그렇게 떠나갔다. 용채의 주검 앞에 윤임례는 몇 번씩 까무러쳤다. 나락이 익어가는 애당리에는 그렇게 윤임례의 절규와 기도가 하늘에 닿을 듯했다. 구름이 몰려왔다. “우리 아들 용채야. 너는 이 땅의 소금이 되었구나. 에미 잘 못만나 그리됐구나. 그러나 아들아 너는 생명수의 샘으로 인도되었고 하나님께서 너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실 것을 이 에미는 믿는다.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세세토록 있을 것이다. 내 아들 용채야.”

그로부터 사나흘 뒤였다. 10월 19일 구름이 하늘을 가려 사물을 분간할 수 없었다. 전북 서남부는 여전히 산속으로 숨어든 인민군 전당과 자생 좌익으로 구성된 사단급 규모가 장악하고 있었다. 전북도당 간부 양성기관인 정치학교가 입암산과 백암산 사이 골짜기에 있다고 했다. 그날 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대밭 대나무가 휘어지듯 흔들렸다. 스산한 소리가 음산했다. 마을 주민들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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