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5.25 토 18:12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13)김용은 목사의 생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2.15 16:14
  • 호수 575
  • 댓글 0
                        김용은 목사

이에 김용은은 “보시오. 당신도 연배가 나와 비슷하신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소?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일본놈 밑에서 살아남지 않았소? 우리가 하나님 복 받아 해방되고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을 친 것 아니오. 농민들이야 좌나 우가 무슨 관계요. 당신들도 토지개혁을 통해 백성들 잘 살게 해 준다고 하지 않았소. 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당신들 수령의 부모도 애초에는 기독교인인 걸로 알고 있소. 그러니 죄 없는 사람들 괴롭히고 처형하는 일은 하지 말아 주시오.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계시오.”라고 지지 않고 반박했다.
치안 대장의 표정이 잠시 흔들리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당신의 이력에 대해 모두 알고 있소. 당신 목숨이나 잘 간수 하시오.

당신과 당신 가족이 살려면 인민의 낙원을 건설하는 일에 동참하시오. 우리도 당신과 같이 똑똑한 사람이 피해를 당하는 것은 원치 않소. 그러니 지주나 경찰, 군 가족 등에게 적극 인민위원회가 하는 일에 나서 해방 조국 건설의 일원이 되라 하시오. 그리고 또 한가지. 오늘 이 순간부터 일체의 종교 행위는 중단될 것이오. 예배를 보는 허튼수작을 하면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하겠소.”

용은은 현재 상황이 신사참배 반대를 위해 저항하고 수모를 당했던 일제감정기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해방된 조국이 아니던가. 우리 스스로가 국민의 대표를 뽑아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예배조차 드리지 못한다니……. “예배를 중단하라니? 당신네들이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지 않았소?”,

“물론이오. 하지만 지금은 전시란 말이오. 당분간 중지하시오. 모이면 미군 놈들이 예배당에 폭격을 가할 것이오.” 용은은 간신히 정읍 경찰서 유치장으로 넘겨지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정읍경찰서로 넘겨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미 정읍교회와 매계교회, 천원교회 등 인근 교회에서 단지 성도라는 이유로 학살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읍교회 예배당이 소실되었고, 매계교회도 불타버렸다. 정읍법원장으로 정읍교회 장로로 봉직했던 홍재기 장로가 모진 고문 끝에 순교했다. 불탄 시신조차 재가 되어 수습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매계교회 박봉래 장로는 정읍 태인면 돌미산 언덕에서 순교했다. 박봉래 장로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또 그 교회 박동춘 집사도 정읍경찰서에 끌려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정읍만이 아니라 영광, 무안, 목포, 신안, 강진, 해남, 영암, 김제, 완도, 고창, 논산 등에서 순교자가 잇달았다. 용은은 그러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몇몇 성도들이 참여하는 예배를 결코 놓지 않았다. 예배 참석을 하고 돌아가면 가까운 곳에 있던 밀고자들이 예배를 참석했던 성도들의 이름을 적어내곤 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그들은 지켜보고 있었다. 살육이 일상시 된 시대, 애당리라고 온전할 리 없었다. 인민군과 자생 좌익들 사이에 유엔군이 참전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그들의 광기는 점차 노골화되어 갔다. 공습도 강화되어 인민위원회는 주민들을 동원, 방공호 파는 일에 투입시켰다. 그리고 철수할 때를 고려해 학살자 명단을 미리 작성해 두었다.

용은도 이 명단에 포함됐다. 광기에 사로잡힌 좌익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반동 처단을 부르짖었다. 그들은 한 다리 건너, 아재고 아짐이어서 마땅히 화살 돌릴 데가 궁색해지자 교회를 지목했다. 용은과 윤임례 집사,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바깥 출입 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눈에 핏발 선 사람들이 여차하면 죽창을 들 기세였다. 사태가 점점 심상찮게 흘러가고 있었다.

용은은 저들에게 발각됐다가는 지난번 치안대에 끌려갔을 때와는 달리 살아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전도사인 용은을 우선 죽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용은의 동생 용석, 용칠 등도 형님에게 피신을 권했다. 9월 12일. 유엔군이 월미도를 제압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됐다. 그 소식은 순식간에 정읍에도 퍼졌다. 인민군들은 기세가 꺾인 채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발악을 해댔다. 

“목사 새끼 어디 있어? 찾아내 끌어내서 죽여버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