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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교회 안의 작은교회 선교운동 (30)제5장 “교회 안의 작은 교회”의 역사적 고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1.18 16:55
  • 호수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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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완 목사 ( 영암벧엘교회 )

스페너의 뒤를 이어 경건주의의 체계를 수립하고 선교 활동을 중심으로 발전시킨 이는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63-1727)이다. 프랑케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이 서로를 섬기는 자세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능숙한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경건주의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 또한 경건주의는 영국, 미국(1730년대), 독일(1700년대 말)에서 시작된 각성 운동 발생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경건주의에 대한 많은 오해와 비판이 있었지만, 경건주의적인 흐름은 각성 운동의 형태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각성 운동을 흔히 ‘신 경건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웨슬리는 경건주의의 소그룹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초대교회 성도의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경건주의 소그룹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웨슬리는 당시 눈에 보이는 제도적인 교회로서 영국 성공회를 존중하면서, 보이지 않는 교회로서 감리교 모임을 중요시했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경건주의의 영향인데 “교회 안의 작은 교회” 사상은 경건주의자들에게서 기인했다.

교회사가 워커(W. Walker)는 《기독교회사》(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에서 스페너와 프랑케,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웨슬리와 감리교 운동, 그리고 대각성 운동을 한 맥락으로 보았고, 곤잘레스(Justo L. Gonzalez)는 경건주의를 스페너, 프랑케,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그리고 웨슬리와 감리교로 3등분하여 메소디스트(Methodist)까지 연결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스페너 당시 정부와 교회와 개인의 개혁을 위한 노력은 급기야 그의 설교 ‘진정한 기독교’와 ‘참되고 살아 있는 신앙’을 주제로 하여 당시의 ‘죽어 버린 가식의 신앙’을 폭로했다. 결국 경건한 성도들은 1670년 이후부터 예배와 더불어 개인의 경건생활을 위해 스페너의 목사관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경건의 모임’(Collegium pietatis)으로 불리었고, 어느덧 프랑크푸르트 안과 밖에서 생겨난 많은 유사한 모임들의 모체가 되었다. 여기에서 그가 내어놓은 대부분의 개혁안들은 요한 안트로부터 출발한 경건운동과 개혁운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개혁을 위해 스페너가 사용한 새 용어가 곧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이다.

웨슬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경건주의는 바로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운동이다. 모라비안의 뿌리는 중세 후기, 기독교의 급진적인 운동들에 두고 있으며, 초대교회로 되돌아감으로써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던 존 후스(John Hus, 1370-1415)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서 시작된다. 후스는 프라하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과격한 신학적 사변보다는 높은 윤리적 목적을 추구했으며, 교회의 혁신보다는 도덕적인 개혁을 바랐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교황청과 대립을 가져왔으며, 급기야 프라하에서 추방되지만 후스는 보헤미아의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그 후 교황청과 극단적인 대결을 벌이던 후스는 콘스탄스에서 열린 종교회의에 참석했다가 체포되어 1415년에 화형당했다.

모라비안의 부흥은 그들과 진젠도르프 백작이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모라비안들은 후스의 후예들로 보헤미아에서 종교개혁 이전부터 일종의 프로테스탄트들로 존재했고, 그들 중 일부가 박해로 인하여 독일에 피난을 와서 1727년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에 은신처를 구하게 되었을 때 그는 난민들과 함께 그의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종교단체를 만들었다.

1) 소그룹 운동

모라비안(Moravian)의 사상과 생활은 메소디스트의 교리와 조직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교리적인 면에서는 신앙 의인화 교리에 있어서 모라비안이 간과한 은총의 수단과 사회적 의무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으며, 복음 전도 실천에도 영향을 주었고, 형제단을 갱생시키는 힘을 주었다. 모라비안 공동체의 영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모라비안을 통해서 웨슬리는 신학적 교훈을 배웠다. 신학적으로 루터의 전통을 이어받은 모라비안들은 구원에 있어서 성령의 순간적 역사와 믿음에 의한 칭의,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강조는 특히 뵐러를 통해 웨슬리에게 전달되었다.

웨슬리는 뵐러에게서 “믿음에 의한 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 “순간적인 회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 변화된 죄인에 대한 확신”의 3가지 주요 사상을 배우게 되었다. 웨슬리가 이러한 교리들을 뵐러에게 들었을 때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후에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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