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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생명보다 강한 것다시 생명의 고귀함을 가슴에 새겨 보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2.29 15:26
  • 호수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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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목사(평택성결교회 원로, 가족행복학교 대표)

또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다. 젊은 부부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자기들 아기를 죽게 해서 비닐통에 넣어 숨겨 다녔다고 한다. 이유인즉 출산 격려금과 양육보조금을 계속 타먹으려고 그랬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기가 혹 병이나서 시름시름 앓았다면 빨리 소아과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지 않는가? 아기의 고통이나 생명보다 자신들의 생존과 편한 삶이 우선이었을까?

과연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 있을까? 산모들은 복중의 태아를 품고 10개월의 불편함을 감내하며 태아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사랑과 생명을 공유한다. 태교를 제대로 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 좋은 생각과 대화, 오감을 통해 좋은 것만 느끼고 전해주려고 한다. 내 생명의 분신에게.

전장에서 들려오는 비윤리적인 살상의 소식과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무차별로 유린하는 행위들은 지구상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는다. 비록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생활고 문제나 아기의 태생적 신체장애 문제가 있더라도 도움 받을 길이 있기에 이번 사건을 저지른 부부의 행위는 용납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에서 덧없이 스러져 간 무수한 젊은 생명들을 생각하며 허망함을 넘어 자책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의 외침에 외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경시나 안전을 위한 시스템 부재 등 총체적 안전 불감증 사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전 흑백영화로 “죽음보다 강한 것”이란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본 영화인데도 인상깊게 기억되어 있다. 남녀 주인공이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어서 더 안타까웠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사랑은 과연 생명보다 강한 것일까?

생명보다 강한 것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존재가 있다. 어머니다. 어머니는 이름만 불러도 목이 멘다. 특히 불효한 자식은 때늦게 후회하며 못내 그리워한다.

군대에서 위로공연 중에 어머니를 떼창으로 부르는 순서가 있었다. 그때 숨어있던 한 분의 어머니가 등장하고 모든 부대원들 앞에서 모자상봉을 한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강인한 군인들 가슴 속에 어머니는 생명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닌가.

생명보다 더 강한 것이 사랑과 어머니라면 이보다 더 강한 게 대체 무엇일까? 내 생활의 편안함이나 혹은 내 욕심, 내 욕망인가? 이것을 위해 자식의 생명조차 헌 신발짝 버리듯 할 수 있는가? 해도 너무한 부도덕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한 해를 보내기 전에 다시 생명의 고귀함을 가슴에 새겨 보자. 아무리 부도덕한 세상에 살아갈지라도 최후의 보루는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한다. 산상수훈에는 사람의 생명이 공중나는 새보다 들꽃인 백합화의 영광보다 존귀하기에 생존을 위해 몸이나 음식을 구하는 염려조차 내려놓으라고 한다.

생명보다 사랑이 강한 것일지 모른다. 생명보다 강한 것이 어머니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결코 내 욕망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헤치거나 포기하지 말자. 생명이 존재하고 보존되어 나가야 지상의 세계는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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