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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80)해방 이전 한국성결교회의 만주 선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1.09 15:46
  • 호수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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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 ( 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

한국성결교회가 1932년 자치 선언을 하고, 경제적 자립를 꾀하려고 한 것은 장로교 선교공의회처럼 존 네비우스(John Nevius) 박사의 선교 방법을 기초로 하여 자체에서 10가지 조항으로 요약하여 한국에서의 선교 방법으로 채택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성결교회도 감리교처럼 간접으로 네비우스 선교 방법에 어느 정도 접근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네비우스 선교 방법은 네비우스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1890년 그가 한국을 방문하도록 초청하였던 언더우드 (Horace Underwood)에 의해 처음으로 4가지 원리로 설명되어졌고, 한국의 선교사들이 앞으로 명심하고 지켜나가야 할 선교 방법의 원칙으로 제공받았다. 곽안련(郭安連, Charles Allen Clark)은 다음과 같이 9가지로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요약한다:

① 광범위한 순회 전도(itineration)를 통한 선교사 개개인의 복음 전도

② 자립 선교(Self-Propagation)

③ 자치 제도(Self-Government)

④ 자치 운영(Self-Support)

⑤ 체계적인 성경 연구(Systematic Bible Study)

⑥ 성서의 교훈에 따른 엄격한 생활 훈련

⑦ 타기관과의 협력(Cooperation)과 일치(Union)

⑧ 불간섭(Non-interference)

⑨ 경제 문제에 있어서 가능한 협조 정신

성결교회가 자치 선언을 한 까닭은 1930년에 들어오면서 교회 수가 증가하고 한국인 교역자가 늘어남으로 한국인 교역자의 역할과 책임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종래의 동양선교회라는 외래 선교사 중심의 중앙 집권적 정치 제도라는 기구를 탈피하고자 하는 주체 의식이 교단 저변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명직 목사는 『활천』 (11권 5호) ‘우리의 각오와 전자치(全自治)’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至今까지 우리는 外資를 依하야 衣之食之作之하엿다..... 至今까지 우리가 믿어 온 것은 事實上으로 西洋을 믿었고 宣敎師를 믿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되지 못한다. 믿기는 믿엇다 하여도 間接의 믿음이라고 奇異한 文句나 붙이면 可할 것이 다. 우리가 祈禱할 때에 西洋에 잇는 維支者들을 祝福하시되 그 心靈과 事業을 祝福 하사 더욱 잘 宣敎의 精神을 뜨겁게 하시고 物質이라도 主께 많이 바치게 하여 달라 고 하엿다.

이것은 말하면 남을 祝福하여 주고 自己는 그 祝福의 陰德을 입자는 一種 求乞式의 思想이엿다. 물론 이러한 祈禱도 좋은 것이다마는 우리가 하나님께 祈禱할 때에 내가 自給으로 일하고, 내 교회가 自給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믿음에서 勇敢스 럽게 나가지 못하였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무엇에 必要를 느끼게 될 때에는 宣敎部 를 依支하지 말고 하나님을 직접으로 믿고 하기를 배우고저 한다. ... 全自治라면 財政 問題가 앞설 것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아가자.”

이명직 목사는 한국인의 독자적인 행정 능력이 없는 4년간의 연회에서 총회로 바뀌는 역사적 시점에서 다음과 같이 지난 1년간에 가졌던 ‘자치 선언(自治 宣言)’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나님께 感謝하는 것은 昨年 一千九百三十二年에 自治를 宣言한 以來 하나님의 祝福과 敎會 一般의 覺醒과 勞力으로 말매암아 나타난 結果는 甚히 큰 것이다. 모든 것이 다 倍로 增加됨에 이르럿다. 總計上 數字로 보면 宣敎費로는 增加된 것이 없다. 그러나 自治宣言 以後 增加는 新設 敎會 五十處, 新洗禮人 二千餘名, 獻金 四萬圓, 新求道者 一萬五千人, 新建築 禮拜堂 十三, 主日學生 三千名 以上 數字가 總會를 지 내기 前에는 아직 明瞭치 못한 點이 없지 않이하나 別노히 어김이 업을 줄 믿는다.”

50곳의 신설교회가 설립되고, 세례교인이 3천여 명에 달하는 놀라운 교세 발전과 함께, 1932년부터 1933년까지의 재정 형편을 살펴보면 자치 선언을 한 후에 자급 비중이 현저히 증가되었다. 즉, 1932년에는 자치 헌금이 전체 수입 금액 중의 29%를 차지하는 1,016,794원이었고, 1933년에는 12,360,900원으로 28.7%에 해당되었다. 또한 만주 선교에 있어서도 큰 성과가 나타났다.

성결교회 제1회 총회장, 이명직 목사(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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