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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0.20 22:32
  • 호수 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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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친구들과 얘기하다 ‘야, 함부로 말하지 마, 아이들은 장난삼아 연못에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는 진지하게 죽어가는 법이여!’라는 말에 친구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른 일이 있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잠언 25:11)”라고 했다. 말 한마디로 어려운 상황을 쉽게 타개해 나가는가 하면 말 한마디 잘못하여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외국 언론에 소개되는 한국인들의 ‘눈치(Nunchi)’는 부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변화하는 사교(社交)상의 정보를 재빨리 처리하는 능력”이라며 긍정적으로 본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직감하는 기술” “성공과 행복에 필수적인 육감”, 한국에선 어린 시절부터 체득하는 상황 인식 개념으로 일종의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다. 온갖 감각을 동원해 다른 사람의 몸짓·언어·표정 등으로 생각과 느낌을 즉시 가늠해 분위기를 간파하는 재주다. 그래서 눈치를 “좋다”고 하지 않고 “빠르다”라고 말한다.

실제 경험했던 일이다. 부목사는 사역 현장에서 아침에 담임목사의 얼굴과 음성의 명암 여부를 잘 살펴야 생존(?)과 사역이 행복하다. 그런데 참으로 눈치 없는 부목사를 본 적이 있다. 담임목사가 어려운 상황에 있었는데, 담임목사 편에 서는 게 아니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며 담임목사의 실수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여 곤욕을 치르는 걸 보았다. 담임목사는 ‘우리 교회에 그가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상황 파악이 매우 빠른 어느 장로를 빗대어 ‘그는 북한 땅에 떨어뜨려 놓아도 살 사람’이라고 하여 함께 웃은 적도 있다. 자기 생존을 위해 적절하게 처신을 잘한다는 얘기였다. 한국에선 어린 나이부터 눈치를 배운다. 주변 흐름을 감지해 그 분위기에 접속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끊임없이 받는다.

그래서 세 살이면 이미 남의 눈치를 본다. 부모가 아이에게 “너는 왜 그렇게 눈치가 없니?”라고 나무라는 데는, 버릇없이 군다고 꾸중하는 한편 ‘왜 주변 상황에 맞추지 못하느냐’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변화하는 주변의 사회적 정보를 빨리 포착한다. 그리고 자신이 유능하고 일에 열심인 것처럼 보이는 데 적절히 활용해 더 나은 사회생활로 이어지게 한다. 눈치에도 장단점이 있다. 부정적 측면은 차치하고 긍정적인 쪽만 보자면, 눈치로 취득한 정보는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공손함과 존중이 눈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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