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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믿음의 사람ㅡ안종순 권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0.12 11:16
  • 호수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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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 저자 )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며 창문을 열라는 방송이 나왔다.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창문 아래서 아주 작은 무인도와 딱 그마마한 풀등이 보였다. 그리고 윤슬이 선명히 보였다.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비행기 창문은 어딘가 굽어 있어 맨 아래와 위는 선명히 보이나 중간쯤 어딘가가 사물이 좀 퍼져 보인다.

그곳 윤슬이, 크게 움직이며 아름답게 일렁거렸다. 저게 윤슬의 참모습인가, 낯익은 산야를 보니 12년이나 떠났던 것처럼 뭉클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소한 것에 예민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떠나는 것도 좋고 돌아오는 것도 좋다.

12박 13일의 유럽여행ㅡ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일박, 다음 날 취리히로 가 삼박 사일, 잘츠부르크에서 삼박 사일 뮌헨에서 삼박사일, 베를린에서 이박삼일을 했다. 굳이 따진다면 4개국을 다녔다. 리히텐슈타인공국을 스위스에서 시티 투어를 하던 날 방문했기 때문이다. 숙소는 전부 에어비앤비였다.

새로운 나라의 가정집들은 일반적인 호텔과는 달리 그곳 나라의 문화를 엿보게 했고 주인의 취향을 추론하게 하는 흥미로운 숙소였다. 시뉘 가족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는데 조카인 미군 장교가 독일에서 근무한 덕에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무슨 일에서든, 어디서 비롯된 거지? 버릇처럼 근원에 대해 생각하는데 이번 여행의 근원지는 안종순 권사다. 남편의 여동생, 그녀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겐 대단히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젊은 시절 안정적이고 보수 좋은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어느 날 그 안정을 접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나처럼 소박한 사람은 꿈도 꿀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의 여정이었다.

몇 년 뒤 그녀는 고급한 영국식 영어를 장착하고 돌아왔다. 귀국 후 외국인교회를 다니다가 같은 교회를 다니던 미국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한전에 파견근무를 하던 하이클래스 엔지니어였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남편의 집안이 무척 좋았다. 큰아버지가 미국의 100대 변호사에 들었었고 시아버지 역시 변호사였다.

여동생은 세계를 누비는 커리어우먼에 그의 남편은 교수였는데 나중에 유수의 대학에서 총장까지 지냈다. 그런 집안의 분위기 탓이었을까? 안종순 권사는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미국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국 아이들과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 신문에 실리기도 했고 청와대의 초청을 받기도 했다.

큰딸은 비올라와 피아노로 음악대학을 갔고 아들은 정치학을 전공한 후에 미군 장교가 되었다. 둘 다 연세대 한글 어학당을 다녀서 한국어에 익숙하다. 이번 유럽 여행의 리더인 한국을 무척 좋아하는 조카는 외교관이 되어서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보니 미국에서 그렇게 오랜 생활을 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밥파>였다. 치즈나 햄 종류를 거의 먹지 않았고 빵 역시 즐기지 않았다. 오직 밥만 좋아했다. 그런 그녀가 아이들 가르칠 때는 혹시 마늘 냄새날까 봐 주말에만 김치를 먹었다고 했다. 성공적인 미국 생활을 위해서 희생한 부분도 있는 것이다.

몇 년전 그녀가 지은 인도 교회의 헌당식 겸 선교여행에 따라갔다가 우리 교회에서도 인도에 교회를 세우는 쾌거를 이루었다. 안종순 권사는 평생 교회 섬기는 일에 열심이었고 선교 후원도 참 많이 했다. 목회하는 오빠도 마음속에 품고 살며 힘껏 도왔다. 부창부수. 여행 중 안종순 권사의 장로 남편은 로마서 강해 책을 틈만 나면 읽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미국교회의 구역 예배 인도자인데 구역원 수가 20여 명 된다고 한다. 남편은 가르치고 아내는 그 구역원들을 다독이며 음식 장만과 서포트를 한다고, 남편과 함께 미국교회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교민들과 기도회를 하며 준 목회자처럼 살고 있다. 지금도 생활비 약 삼 분의 일을 교회 선교에 사용한다니 대단한 일이 아닌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카고 시뉘 집에 갔는데 지금도 기억난다. “세라, 기도하고 피아노 쳐야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피아노 시작 전 기도를 시키는 것, 목사의 아내인 나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라 旅愁를 담아 짤막하게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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