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3.3.21 화 23:24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75)해방 이전 한국성결교회의 만주 선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9.28 14:34
  • 호수 562
  • 댓글 0
정상운 박사(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최석모 목사의 이 글이 나오기 전에 이미 동양선교회 성결교회에서는 1932년 1월 29일에 박문익(朴文翼)과 신원식(申元湜) 2인을 봉천에 파송하여 선교에 착수하게 하였다. 이들은 일제가 중국 대륙침략의 발판 확보와 재만 한인의 항일 투쟁과 민족주의의 근거지인 만주를 억압할 필요성에서 획책한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더욱 황폐해진 만주 봉천에 들어가서 날로 증가하는 여러 피난민 수용소에까지 사중복음(四重福音)을 전하였다.

최석모 목사는 박문익과 신원식의 사역을 활천에 소개하여 만주 선교의 필요성을 실감있게 호소하였는데, 그 영향은 조선과 만주에 걸쳐 지대했다. 따라서 성결교회는 하얼빈에 황성택(黃聖擇), 봉천에 장서철(張瑞哲), 포하(蒲河)에 노인(盧忍) 등을 파송하였고, 봉천성결교회의 어려움을 들은 경성의 아현(阿峴)성결교회에서는 유년들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성경과 구제금을 급송하기도 했다. 다음의 글은 최석모 목사의 '만주 선교의 급선무'(『활천』 10권 8,9호) 중의 일부이다:

“우리 조선 안에서 전도할 것도 급하지 아닌 것은 아니다. 저 만주 등지에 있는 동포들의 참상은 실로 각일각의 위급(危急)을 고하는 것이다. ...중략... 아! 순복음! 근일에 받은 봉천 서신에 의하면 날마다 피란동포 7,8명씩 몰려들어서는 늙은 부모 어린 쳐자를 끌어 거리거리 유리(流離)하며 문전마다 주저 앉아 고픈 배를 움켜잡고 부르짖는 중 설상가상으로 역병까지 유행하여 매일 죽어나가는 참상은 눈을 가진 자는 차마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봉천 성결교회에서는 피와 눈물을 짜낸 돈 10여원을 가지고 한 때를 먹이는 중 어떤 군인으로부터 41원의 동정까지 있서서 20일 동안에 한 20명의 밥을 공급하여 제 3수용소에 수용하였는데 시급한 것은 성경과 성가 전도지 또 앉을 자리라고 한다. 이 급한 소식을 먼저 들은 아현교회에서는 어린이들이 부흥성가 227부, 장년이 성경 200부 금 10원을 급송하였다고 한다.”(현대체로 임의로 바꿈)

이처럼 만주에 대한 선교의식의 고취와 본국 교회의 지원, 그리고 만주 전도자들 의 열정적인 전도, 이명직 목사의 부흥 성회에 힘입어 성결교회의 만주 선교는 1932년에 들어와 새로운 발전적인 계기를 갖게 되어 만주의 선교적 거점인 용정교회에 이어서, 남만은 봉천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③ 재만 성결교회의 발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장 · 감은 만주 선교에 진척을 보이고, 그 중요성이 증대되자 만주를 분할하여 장로교는 남만노회와 간도노회, 셰리아(시베리아) 노회로, 감리교(조선 감리회 만주 선교연회)는 1931년에 북만 지방과 간도 지방으로 나누어 조직적이며 효과적인 선교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이에 성결교회도 1930년대에 들어와 만주 선교가 발전 일로에 이르자, 성결교회 제4회 연회(1932년)에서는 성진(城津)지방회에 재만 성결교회들을 속하게 했으나, 이듬해인 1933년 성결교회 제1회 총회에서는 북부 지방에 용정과 옹성습자(甕聲習子)교회 등을 속하게 하고, 따로 선교 지방을 조직하여 일본 지방과 만주 지방을 나누고, 봉천, 포하, 구련둔(溝連屯)교회 등을 만주 지방에 귀속시켰다.

1934년 1월 24일부터 28일까지 성결교회 제2회 북부지방회가 북청읍(北靑邑) 서리(西里)성결교회에서 열렸다. 이때, 북부지방회는 동만 일대를 선교지에 가입시키자는 건(件)과 지세상(地勢上) 관계와 경제(經濟 문제를 들어 북부지방회를 둘로 분립해야 한다는 건의안을 총회에 제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에 다른 여타의 지방회와 같이 만주를 2개 지방으로 분할하여, 동만 지방과 북만 지방으로 나누어 만주 선교에 진력하였다. 그리고 이 2개 지방회의 관리에 있어서는 만주 성결교회 본부를 봉천시 대화구(大和區)에 있는 봉천교회 내에 두고 만주 전체를 통관하게 하였다.

 

만주 봉천 피난민 수용소 안의 신자들과 구도자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