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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81)제6편 미주성결교회 성장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9.15 16:26
  • 호수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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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미주의 한인교회 

제3절 하와이에 설립된 교회들 

한국인이 하와이에 이주하기 시작하여 1903년부터 1945년 해방되기까지 하와이 땅에 설립한 주요 한인교회는 1903년 11월 3일 호놀룰루에 안정수, 유병길, 홍승하 목사가 중심이 되어 감리교회를 설립하였다.

각 지방에 세운 교회들은 1905년 4월 에와교회, 그해 8월 와이파우교회, 10월에 목골이아교회, 1906년 11월 리휘교회 등 해마다 여러 곳에 교회를 설립하여 한인사회를 더욱 힘차게 나가게 되어 하와이섬 4개 지방에 24개 교회를 설립 하였다. 그리고 교회가 한창 번성할 때는 교인 수 1,150명에 달했다. 그리고 각 지방으로 흩어진 교포들은 각종 사업을 영위했으며, 중심이 되었던 호놀룰루교회는 한때 장년 394명, 청소년 200여 명으로 부흥하게 되었다.

1918년 7월 29일 평신도총회를 개최하고 ‘한인기독교회’라는 교회를 하와이에 세우고, 어떤 교파에도 속하지 않고 초교파적인 교회이긴 하지만 교회 제도는 감리교회 제도를 따르고 대표자는 이승만의 지도하에 이사부라는 지도체제를 조직하여 교회를 운영하게 되었다. 1928년 5월 10일 교회 확장을 이유로 교회당을 매각하고, 1928년부터 1938년까지 10년 동안 신흥국 목사가 학교를 임대하여 사용하다가 1938년 릴리하에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하와이에는 호놀룰루에 1개 교회가 있었고 각 지방에 15개 교회가 설립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신자들이 지방에서 호놀룰루로 대거 이주하게 되어 지방교회는 문을 닫고 하와이에 한인교회 2곳만 남아 1945년에는 교인 수도 약 400여 명밖에 없고, 때마침 조국이 해방되어 이승만 박사가 귀국하여 대통령이 되고, 1956년 4월에는 하와이에서 이종관 목사를 귀국시켜 서울에다 ‘하와이 한인기독교 서울교회’를 설립하여 초대 담임목사로 안수훈 목사(저자)를 청빙하고 크게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어 안수훈 목사는 이승만 박사의 도움으로 옥인동에 대지 3,500평에 건평 350평의 교회 건물을 건축하였다. 1960년 안수훈 목사는 미국으로 출국하고 ‘하와이 한인기독교 서울교회’는 기독교 장로교회 교단에 편입되었다. 

제4절 미국 본토에 설립한 한인교회(1) 

한국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한 1903년부터 교회설립을 시작하여 1945년 해방되기 전까지 하와이에 10여 개 교파가 있었고, 교회 수도 40여 개가 설립되었으나 1905년부터 1907년 사이 미국 본토로 이주 바람이 불어 농장에서 농사하던 동포들이 대거 미국의 도시로 진출하여 하와이섬에 세워졌던 교회들이 점차 문을 닫게 된 것이다. 1945년 하와이에 남아있는 한인교회는 감리교회 4개 교회와 기타 기독교 3개 교회, 그리고 성공회 1개 교회뿐이다. 그리고 1905년부터 미국 본토에 이주하는 한인들은 날로 증가하였다.

1905년 샌프란시스코에 ‘한인전도회’를 조직하고, 문경호 전도사의 인도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 전도회는 나중에 감리교회에 소속되었다. 1906년 6월 7일 방화중 전도사가 부임하였고, 그 후 양주삼 전도사가 부임하여 미국 남감리교회 선교본부의 도움을 받아 건물 한 채를 월세로 얻어 교회로 꾸미고, 1906년 12월 16일 헌당식을 거행했다. 1911년 8월 5일 이대위 목사가 부임하여 ‘한인감리교회’로 변경하였고, 1915년 6월 ‘대한인 국민회관’으로 교회를 옮겨 1928년 6월에 선교부의 보조와 성도들의 헌금으로 파월스트릴에 교회를 신축하였다. 이 교회는 문경호, 방화중, 양주삼, 양주은, 김창수 등 전도사와 이대위, 황사선, 김하태, 임두화, 안병주 등 목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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