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3.3.27 월 14:42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키워드로 보는 세상⑥귀차니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9.15 16:00
  • 호수 561
  • 댓글 0
김광연 교수( 숭실대학교 )

우리는 지금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삶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깝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거리는 KTX를 타면 아침에 식사 약속을 마치고 점심에 서울에 와서 또 약속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단축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세상 어느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 대학교의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 누구와도 영상통화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만큼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좁아졌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거리가 좁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옛 어른들의 삶을 잠시 동경해 본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에게 사용되던 이웃사촌이라는 말처럼 어른들은 아침 일찍부터 동네 사람들과 마주보면서 혈육은 아니지만 친척들처럼 안부를 묻고 서로를 위하며 살았다. 그때 동네 사람들과의 거리는 무척 가까웠다.

저 멀리 사는 친척이나 가족들은 명절 때 아니면 보기 힘들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가면 하루 종일 걸리기 때문에 자주 찾아보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마을호(지금의 ITX)가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면서 그나마 시간이 단축되었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들에게서 사람들 사이의 간격, 물리적 시간과 거리감은 너무 멀었지만 마음은 정말 가까웠다. 같이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은 저녁 식사는 물론 심지어 숟가락만 들고 아침 식사를 친구네 집으로 가서 먹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 만큼 사람들 사이의 오고가는 정도 많고 거리감도 가까웠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과학기술의 덕택으로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가까워졌다. 미국에 사는 친구도 영상통화로 실시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전 세계 누구와도 1분이면 만날 수 있고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그 어느 시대보다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멀다.

내 이웃 집 바로 옆에 누가 사는 것도 모르고 우리는 그렇게 지낸다. 아파트 같은 동 옆집 사람이 길에 지나가도 누군지 모르고 지나친다. 정말 이웃 간의 거리감은 서울 부산의 거리보다 멀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세대는 그 누구의 간섭도 받기를 꺼려한다. 말 그대로 ‘나홀로’ 를 가장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낯설 수밖에 없다. 이웃이 누군지 신경 쓸 시간도 없다. 도심에 살다보니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사회구조에서 너무 당연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참으로 역설적인 사회이다. 그 어느 시대보다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가까워질 수 있는 기술이 있지만, 그 어느 시대보다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멀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간섭조차 거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귀차니즘’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간혹 만사가 귀찮을 때가 있다. 그 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 누구의 간섭도 받기 싫고, 그 누구를 만나기도 싫을 때가 있다.

특히 요즘 각박하고 그 어느 누구도 곁에서 지켜봐주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너도나도 ‘나홀로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만사가 귀찮아서 사람들은 ‘귀차니스트’가 되고 있다. 물론 귀차니즘이 게으른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귀찮은 것이 게으르다고 볼 수는 없다.

때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바쁜 경쟁 사회에서 잠시 삶의 포화상태를 경험할 때도 있다. 그 때 우리는 만사가 귀찮은 것을 느낀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너무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심한 스트레스와 경쟁 그리고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현대인들이 벅찬 나머지 귀차니즘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귀차니즘은 긍정의 의미도 부정의 의미도 아니다. 그냥 ‘멍~’하고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즉 휴면이고 싶어할 때 우리는 귀차니즘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만사가 귀찮아서 잠시 쉬고 싶을 때는 귀차니즘도 필요하지 않을까?

얼마 전 서울 한강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열었다. 취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쉼’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아무런 생각없이 멍~한 상태로 가만히 앉아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잠시 생각의 멈춤을 가져오는 대회이다. 어쩌면 만사가 귀찮아서 잠시 내려놓는 것도 좋은 의미로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멍때리기 대회, 귀차니즘, 이런 단어들은 현대인들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힘든 시간은 차고 넘친다. 그리스도인들도 경쟁과 바쁜 일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바쁜 일상에서 멍때리는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조용히 흘러나오는 찬송가에 잠시 눈을 감아본다. 마음 속에 깊이 찾아오는 찬송의 평온함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