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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초 선교사 전킨 선교사’ (44)군산 선교사 시절, 나의 아버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8.31 17:15
  • 호수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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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킨 선교사 ( 1865년 12월 13일 ~ 1908년 1월 2일 )

나는 홍역에 걸려서 병원에 갔고 그 당시 어떤 학생이 성홍열에 걸렸다. 내가 그 성홍열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성홍열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두 주 동안 격리실에 있었다. 거기까지가 치푸에서 기억이다.

배를 타고 한국 전주 집으로 귀국하였다. 그 배는 우리가 군산에서 서울과 군산을 오가는 교통수단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서울을 오가면서 선교사 합창단을 이끌어 나갔다. 아버지는 아름다운 테너 목소리로 찬양하였다. 우리는 노래하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나도 테너를 하고 싶었지만 테너 음은 너무 높아서 베이스로 찬양하였다.

내 경험을 다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전주에 다시 왔을 때는 내가 이제 좀 더 컸기 때문에 아버지가 사냥하러 갈 때 될 수 있으면 동행하려고 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자녀에게 매우 좋은 친구였다.

마지막으로 세 가지 추억을 더 말하고 싶다. 첫째 기억은 고아에 대한 기억이다. 포사이드 의료선교사는 매우 훌륭한 의사로 천사와 같은 분이었다. 아버지와 그 의사는 고아들을 모아서 우리 집 부근에 고아원을 마련해줬다. 그리고 그들은 나병 환자들을 모아 순천에 거처를 만들어 줬다. 순천의 나병 환자촌은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거처가 되었다.

둘째, 고아에 대해 말하자면 윌리암과 내가 시내로 걸어가고 있는데 12~13세 정도 되어 보이는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소년에 대해서다. 우리가 좋아하는 친구 같은 사냥개가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따라와서는 그 고아를 추적하였다. 우리가 재빨리 사냥개를 따라갔을 때는 어느새 그 고아에게 뛰어올라 그 아이의 왼쪽 뺨을 물었다.

우리는 멀베리 막대기를 꺾어서 개에게 집으로 가라고 큰소리를 지르며 쫓아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한국 아이 옆으로 가까이 가보니 이 고아는 이미 광견병에 걸린 한국 개에게 물려서 광견병에 걸려 있었다. 우리는 그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고 다행히도 우리는 광견병 면역 혈청을 일본으로부터 구해서 치료해주었다.

그 아이가 회복된 뒤, ‘나는 다른 개가 문 것이 아니라 훌륭한 선교사님의 개한테 물려서 다행이라고 해서 내가 살아났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하였다. 셋째, 나에게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매우 소중한 추억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다른 때보다 설교를 짧게 하고 귀가하였는데 심히 피곤해 보였고 폐렴에 걸린 것이었다. 아버지가 폐렴으로 자리에 누웠다.

그 당시는 의사도 없었지만, 의사가 있다고 하여도 약이 없어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현재 같으면 폐렴을 잘 치료할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치료받을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 사는 곳에서 가까이 지내던 닥터 오에게 전보를 쳤다. 우리는 닥터 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닥터 오는 뉴이빌 켄터키에 가서 의학을 공부하도록 하였는데 그 의사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교사들이 미국으로 의대를 가도록 했지만, 교육받은 후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눌러앉았다. 아버지 병은 더욱 악화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 동생 윌리암을 불러서 “천국 아버지가 천국 집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작정하셔서 본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신다. 어머니 말씀을 잘 듣고 어머니를 잘 돌보거라. 그리고 항상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를 기억하라”고 부탁하였다.

아버지 소천 시, 나는 함께 하지 못했다. 소천하시기 전, 녹음된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였다. 죽어가는 사람이 이런 말을 남긴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과 해야 할 일을 놓고 떠나는 것은 슬픈 일이었지만 하나님 아버지를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소명을 다하고 본향을 향해 간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나는 소년으로서 아버지가 소천하신 다음 날 일기장에 ‘아버지를 대신해서 죽을 수만 있다면 수천 명의 한국의 여자, 남자 그리고 소년들이 희생하겠다고 나서서 전 목사가 살아서 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도록 했을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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