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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여행의 풍경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8.31 14:31
  • 호수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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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KTX를 타고 뚜벅이 여행을 떠났다. 아들 회사에서 호텔을 잡아줘서 부산으로, 계획에 없던 한여름 여행이다. 내 여행지론 중의 하나가 무엇이든 정점일 때 안 간다는 것이다. 축제 때도 피하고 바캉스 철도 피한다. 주말이나 휴일도 피하고 어울려 가는 여행이라면 몰라도. 한여름이나 한겨울도 나 스스로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첫날은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부산 박물관에서 내렸다. 조선 시대 목기류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릇이나 도자기는 관심이 없어서 여기저기 다니며 옛 그림을 찾아서 보았다. 체험관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한참 대화를 하게 됐다.

그녀는 서울 국립 박물관 이야기를 했다. ‘오 나의 최애 장소예요. 전시가 바꿀 때마다 가보는 곳이죠’ 서울 치중 문화에 대해서도, 이제는 큐레이터 역량이 아주아주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서로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정원에 배롱나무가 근사하게 피어나 있었다. 나무는 더위를 타지 않는 걸까? 배롱나무가 참 시원해 보였다.

버스 안에서 하는 윈도우 투어. 부산역으로 돌아와서 맡겨 놓은 캐리어를 찾아 해운대 메리어트를 갔다. 아들 이름이 없다. 엥? 송도에도 메리어트가 있다고, 아 그렇지 송도였는데 어느 때부터 해운대로 인식을 해버린 거지? 늙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헐거워진다는 뜻이다. 음, 남편은 한소리 하고픈 표정이 역력한데 참는다.

생각보다 송도와 해운대가 멀었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돈도 아깝기도 해서 다시 버스를 탔다. 버스만 타면 천국이다. 시원하기가. 그리고 택시보다 훨씬 더 느긋하고 커다랗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 송도 메리어트는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 깔끔했고 바닷가 뷰 맛집이었다.    

생각해보니 시티투어버스가 또 다른 속박을 요구하더라. 시간을 맞춰야 했고 그러자니 마음이 급해지고 느긋함이 없었다. 그래서 둘째 날은 아예 버스를 검색해서 그냥 일반 버스를 탔다. 첫 방문지 흰여울 문화마을은 바닷가 절벽 위에 세워진 오래된 마을과 그 골목길. 그리고 바다 쪽으로 푸르고 하얗게 칠해진 길이 또 하나 있었다.

위에서 걷다가 바닷가 쪽으로 가서 걸으니 자그마한 터널이 있고 길게 줄이 늘어서 있는데 터널 입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줄이었다. 젊은이들은 주로 뒷모습을 찍었다. 잠깐 그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태종대는 오래전 기억도 가뭇해서 다누비 열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았다.

오후에는 부산시립 미술관. 좋았다. 특히 이우환의 공간이, 돌과 철판의 이야기가, 이제는 돌이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 혼자라서 쓸쓸한 사람, 혼자인데도 당당한 사람등,

셋째 날 이른 아침 창문을 조금 열어놓으니 파도 소리가 제법 철썩인다.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벌써 물에 들어가 놀고 있다. 물가를 걷는 사람도 모래사장을 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처럼 풍경이 되지 못하고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그분을 보았다. 방이 11층이니 사람들의 크기는 내 손가락 정도일까.

그래도 신기한 것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다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지팡이를 짚은 모습이 달빛 화가 존 엣킨스 그림쇼의 니어링 홈에 나오는 할아버지였다. 환한 달빛이 비치는 길을 손주와 함께 걷는 그림. 아이는 하늘의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고 그 아이의 보호자는 분명 할아버지인데도 오히려 아이에게 기대는 것 같은 늙고 외로운 모습, 건강한 사람이라면 몇 분 몇 발자국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아주 천천히 걸었다.

걸음이 아니라 마치 모래 위에 자신의 존재를 새기는 것 같았다. 그렇다. 누군가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으로도 곡진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여전히 햇살은 작열하며 여름의 핏대를 세우지만 여름 자신도 다가오는 가을의 침묵도 알고 있다. 사라지는 여름의 향기를, 모든 정점이 쇠락의 조짐을 풍성하게 품고 있다는 것은 삶의 어느 한 부분을 예시해주는 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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