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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니우스와 21세기 기독교 교육의 방향과 과제(3)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8.19 16:52
  • 호수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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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본 글은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설립 22주년 기념 강좌에서 정일웅 교수(전 총신대학교)가 발표한 강연이다. 본지는 한국 기독교 교육의 방향 설정과 과제제시를 위해 연재해 드립니다. 

2. 코메니우스가 지향했던 교육 방향의 실제적인 두 가지 과제?

특히 앞서 소개한 7권의 미완성 대작에서도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할 것이다. 독일의 교육철학자 샬러교수는 코메니우스의 교육적인 대작품 “범교육학”(Pampaedia)의 연구에서 코메니우스가 목표한 교육 방향의 두 가지 과제는 “메타노이아”(Metanoia)와 “인스티투티오”(Institutio)의 관계로 해명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며(metanoia,회개), 원래 부여한 창조세계의 다스림의 책임을 망각한 인간을 깨우쳐, 그 사명을 바르게 수행하도록 본래 신분의 위치에다 세우는 것(institutio)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코메니우스의 두 가지 과제는 생각하면 한국교회가 그간 성실하게 지향해 온 우리 목사님들의 목회 사역과 같은 것이었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지속해야 할 21세기 기독교교육의 방향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목회자들은 이 시대에 기독교교육실천의 책임자들이며, 모범적이 교사라 할 것이다. 생각하면 한국교회의 어떤 목사님들은 교회의 사명인 이 두 과제를 분리하여 두 번째 과제보다 첫 번째 과제성취에만 책임을 말하고, 두 번째 과제를 간과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아마도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복음의 사회적 실천을 외면한 모습인지를 코메니우스에게서 도전받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본 코메니우스 연구소는 목사님들의 이러한 막중한 교육 목회적인 과제 실천을 돕기 위하여 앞으로 목사님들을 깨우는 재교육의 과제를 힘쓰려 하며, 여기 “히스토리 캠퍼스”는 그러한 교육 실천의 장(場)이 되기를 염원한다. 

3. 신 형상회복은 21세기의 기독교 교육이 지향해야 할 실제적인 과제이다. 

코메니우스는 바로 인간의 신 형상회복의 과제 때문에, 부모의 자녀교육 책임을 도우려도 “어머니 학교의 소식”이란 책을 만들었으며(1631), 동시에 잘못된 방향에 놓여 있는 일반학교교육의 개선을 위해 “보헤미아의 교수학”(1632)과 후에 “대교수학” (1657)이란 이름의 수정된 책자를 출판하였다. 이 문서들은 오늘날까지도, 신 형상회복을 위한 인간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사교육지침서”이다. 심지어 일반학교의 교사와 특히 기독교 대안학교의 교사, 교회학교의 교사들이 읽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귀중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코메니우스의 신 형상회복의 과제는 오늘날 일반교육학이 지향하는 인성교육, 또는 전인교육의 목표와도 연관성을 가진다. 그러나 코메니우스가 지향한 목표는 타락한 인간의 신 형상회복에 두었다. 그의 인간론을 잠시 소개하면, 인간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중앙에 자리한 존재로 인식했다.

이것은 오늘날 현대 교육학이 지향하는 인간의 주체성(Subjektivitaet)과 자율성(Autono- mie)확대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창조세계 안에서의 기능적인 역할의 의미에서였다. 특히 거울과의 비교에서 코메니우스는 그 기능적인 역할의 의미를 잘 말해 준다. 인간에게는 이성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것은 둥근 공이 거실에 걸려 있는 모습처럼,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의 현상을 붙들고, 그것들을 반사하는 거울의 역할로 본 것이다. 거울이 그 기능을 잘 수행하려면, 올바르게 설치되어 있어야 하며, 빛이 그 위에 비추어져야 한다. 인간이 세계 전체를 하나님께 반영할 때, 그의 과제는 거기서 올바르게 이행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코메니우스는 그 당시 스콜라주의 신학에서 설명했던 대우주(macrocosmos)와 소우주(microcosmos)의 관계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밝힌다.

인간은 하나님의 것(우주 전체)을 축소한 모사(模寫)라는 것이다.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생각은 신풀라톤주의 유출설의 영향을 받았지만, 실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아와 하나님으로 말미암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관계를 밝힌 것이다(롬11:36). 그리고 인간의 신 형상은 부여된 이성의 사유능력과 자유의지의 선택이 올바르게 행사될 때, 하나님께 가장 뚜렷하게 일치된 모습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하고, 하나님 자신을 그 형상 안에서 볼 수 있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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