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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가진 인간 (Homo Fidei)붉은 향연이 짙어지고, 거리에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며, 의미 있는 사유(思惟)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계절이 도래(到來)했다. ‘내적인 자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주어져 있는 지금, 잠시 벤치에 앉아 ‘사유의 흔적’을 남겨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11.0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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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향연이 짙어지고, 거리에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며, 의미 있는 사유(思惟)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계절이 도래(到來)했다. ‘내적인 자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주어져 있는 지금, 잠시 벤치에 앉아 ‘사유의 흔적’을 남겨보자.

오늘의 사유의 작업은 ‘신앙하는 인간(Homo Fidei)’에 관한 이야기이다. 진홍빛으로 물든 자그마한 언덕 아래, 존재론적인 물음을 던져볼 만한 옹달샘이 앞에 놓여 있다. 바로 우리들의 사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옹달샘, 그 곳에 생각이 담겨져 있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자. 그 순간 헤아릴 수 없는 동그란 물결이 마음 속 깊이 파고든다.

우리는 실존(實存)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안고 살아간다. ‘실존(Existence)’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모든 사물은 존재하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지탱한다. 하지만 그들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다소 전체적인 존재방식을 택했다. 가을의 국화가 아름답다. 그 국화는 종류를 구분하지만, 개별적인 국화 하나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개별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또 전체적이다. 그리고 인간은 종교적인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 와 사색적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e)’이다. 그리고 놀이와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존재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이다.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호이징가 (Huizinga, Johan)는 『호모루덴스-유희에서의 문화의 기원』에서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를 재창하여, 행위의 순수성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 행위가 가져오는 이익에 연연치 않고, 즐거움을 추구할 때, “사람은 가장 인간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여기서 놀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놀이는 자발적임과 동시에 언제나 인류 역사와 더불어 함께 해 왔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놀이의 형태는 축제나 제의(祭儀) 형태를 띤다. 제의로서 놀이는 인류의 평안을 기원하며, 모든 집단과 문화에서 존재했다. 그 놀이를 통해 신(神)에 대한 기원과 인류에게 있어서 그 집단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다.

이 놀이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이다. 어린이들은 완전하게 놀이에 몰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놀이와 하나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독일 가톨릭 신학자 구아르디니(Romano Guardini)는 [예배의 정신]에서 예배는 놀이의 최고 형태이며, “목적은 없으나 의미는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예배의 형태는 인간의 실존 곧 종교적 실존에서 발생한다.

인간은 종교적 실존을 추구한다.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초월자 곧 신(神)을 동경하는 속성을 지닌 인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인간으로서는 당연히 제의(祭儀)의 형태를 띤 예배를 통해 초월자를 기대하면서, 집단의 번영과 축복을 기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형태로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제의 형식을 띤 ‘놀이’가 발전된 것이다.

신앙을 가진 인간 (Homo Fidei)으로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그래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종교적인 인간의 모습을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든 인간은 자연스럽게 ‘신(神)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죽음 이후의 세계와도 연결 짓는다. 유희 가운데 신에게 기원하는 축제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종교적 인간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신앙하는 인간’으로서 점진적 변화가 필요하다.

신앙하는 인간은 모든 인류에 내재된 실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신앙하는 인간은 하나님과의 합일(合一)을 지향한다. 단순히 신(神)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신(神)과 하나가 되고, 그 분을 통해 유한한 존재인 자신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 극복의 단계는 ‘구원’과 관련이 있다. 유한한 존재로서 죽음 이후, 구원에 대한 신앙을 요청하게 된다. 성경은 “다른 이 곧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행 4:12)”고 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구원이 요청되는 대목이다. 구원은 인류가 지향하고 관심을 가진 존재론적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과 ‘구원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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