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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초의 전킨 선교사’ (41)군산 선교사 시절, 나의 아버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7.27 16:48
  • 호수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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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킨 선교사

(1865년 12월 13일 ~ 1908년 1월 2일)

또 다른 궁멀에서 기억은 아버지가 순회설교를 하러 가신 겨울날, 동생과 나 그리고 도우미 엄마와 같이 방바닥에 앉아 있었고 우리 어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그 도우미 엄마가 ‘우리 할머니가 죽었는데, 우리 할머니가 지옥에 갔을까요?’라고 질문을 하였다. 나는 도우미 엄마를 매우 사랑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듣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도우미 엄마의 할머니가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선교사로서 매우 신실하고 엄격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궁금해하셨다. 어머니가 한동안 답변을 생각하시더니 어머니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천천히 설명해 주셨다. 오늘날 우리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방법이 있다. 성경에 모세와 나사로가 구원받아 천국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반열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있다.

다윗도 역시 비록 여러 죄를 지었지만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니 그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하실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이 땅에서 이 귀한 이름 예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죽었을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해결하신다는 설명이셨다. 아마 도우미 엄마는 상당한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나도 많은 위로를 받았다.

 궁멀을 떠나기 전에 두 개의 사건이 생각난다. 집에 사는 뱀에 대한 이야기인데, 집에 사는 뱀은 독사가 아닌 큰 뱀이었다. 한국집 기와 지붕 밑에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 아버지가 순회 설교를 가셨을 때, 새들이 짹짹거려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면 뱀이 그 새 둥지에 올라가서 새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긴 뱀을 끌어내서 칼로 배를 갈랐더니 뱃속에서 여덟 마리 참새 새끼가 나왔다. 큰 동물은 시간이 걸려서 그런지 통째로 삼킨다고 했는데 참새를 통째로 먹었나 보다. 그 당시 나는 여섯 살 또는 일곱 살 정도였는데 생각이 깊은 아이로서 성경 말씀을 궁금해하였다. 그 참새를 보고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지금은 그 뜻을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는 왜 어린 참새가 땅에 떨어져서 개미에 둘려 쌓여 죽었는지 궁금하였다. 왜 하나님은 그 불쌍한 참새가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지 않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것은 성인들도 해석할 수 없는 신학적인 문제이지만...

뱀에 대한 추억이 또 있다. 한국집 천장에는 긴 나무를 사용해서 만든 매우 질긴 종이를 천장에 발랐다. 이 종이는 세계에서 가장 질겨서 찢기가 어려웠다. 밤에 내 침대 위에 천장에서 뱀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기어 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천장에 바른 종이가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종종 무서운 생각이 들곤 하였다.

 아버지는 편도선염으로 때때로 고생하셨다. 그 당시는 의사도 부족했고 약도 부족했다. 낮에는 괜찮았지만, 밤에는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매우 키가 크고 항상 활동적이고 부지런하셨지만, 편도선염이 자주 걸려서 힘들어했다. 아버지의 빈번한 편도선염 발생은 아버지의 사역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매년 한국에서 사역하는 외국 선교사들이 모두 서울에서 모여 선교대회를 열었는데 호주 선교사, 북장로교에서 파견된 선교사, 남장로교, 감리교 선교사 등이 모이는 큰 선교 모임이었다. 이 회의는 일 주일간 열리는 대회로 선교보고 등을 하였다. 내가 약 열 살쯤 되었던 해, 나는 아버지와 그 회의에 동참하였다. 그 회의 자리에 나는 아버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어떤 회의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고 의제를 정확히는 몰랐지만, 아버지가 군산에서 6주간씩 순회 설교를 하는 것이 아버지의 건강에 부담이 클 것이라며 아버지의 사역지를 군산에서 전주로 옮기는 것에 대하여 상의를 하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담대하게 일어서서 단호하게 그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하였고 반대투표를 하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건강 때문에 사역지를 옮기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시는 아버지가 매우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그 의견이 통과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역지를 전주로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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