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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보상을 생각하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7.14 17:42
  • 호수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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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봉 목사(동대전성결교회 원로)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 이야기’는 겸손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카로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뛰어난 건축가이자 발명가였다. 그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밀함과 인내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자신과 아들을 위한 날개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날개는 매우 다루기 어려웠다. 태양에 가까워지면 깃털을 붙인 왁스가 녹을 위험이, 바다에 가까워지면 날개가 젖을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너무 높게 날지도, 너무 낮게 날지도 말라고 충고했다. 태양 가까이 날아가는 교만함과 바다 가까이 날아가는 수치심 사이, 즉 겸손 지대(humility zone)에서 날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음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겸손은 기독교의 강령이나 기독교 윤리의 과제가 아니라 삶의 변화이며 생활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한 인격을 함양하는 것이며, 더불어 사는 삶에서 ‘나 다운 나’를 보여주는 생활이다. ‘나를 바꾸는 마지막 용기’에서 ‘로스 엘렌혼’은 “겸손은 자만심의 반의어로서 수치심의 해결책이다. 겸손의 부재는 자기애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자만심이 거창하고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생각과 관련된 의미라면, 겸손은 현실에 기반을 둔 태도와 관련되며 땅을 뜻하는 라틴어 ‘humilitas’에 어원을 둔다. 겸손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잘난 척하거나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 때문에 열망이 위축되거나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이 있다면 자신에게 경탄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재능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감의 결여는 수치심과 자만심을 갖게 하여 겸손과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일 수 있다”라고 하였다.

겸손은 현실에 발을 딛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며 자기 환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막아주면서 과도한 자신감을 안정시키는 무게 추 역할을 한다. 또한 지나친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보호하며 진창 밖으로 고개를 들어 원하는 것을 주시하도록 해준다. 뱃사람들은 명확한 표지물이 없어도 목적지까지 어떻게든 길을 찾아 항해한다고 한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지점에서도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길을 찾는다고 한다. 겸손은 자기지향(self- orient) 능력을 제공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받아들이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기준점을 갖게 된다. 겸손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지금 누구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겸손 지대를 알아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 지대에서 현명한 처신을 하며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그 자부심은 원하는 것과 얻는 일 사이의 긴장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잊을 만큼 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교만해지지도 않는다. 자만심과 수치심 사이의 불가피한 시소 위에서 자기애적 방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우리를 빠뜨리려는 함정이 많다. 자만, 오만, 교만이다. 이것들은 포장된 자신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거창한 뭔가가 되고 싶어 하는 거창한 욕구를 포기할 수 있는 용기와 겸손이 필요하다. ‘당신과 나’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초인간’이 아니다. 주어진 순간에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해도 정말 괜찮을 때가 매우 많다. 화려하지 않고, 우월하지도 않으며, 수치스럽지 않고, 자기 비하가 없는 겸손 지대에 머무르는 것은 실제로 좋은 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그들로부터 힘을 얻고, 우리의 힘을 빌려주는 것 또한 놀랐고 멋지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한낱 인간이라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임을 꼭 기억하여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능력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할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자만심으로 높이 날기만 한다면, 인생에서 놓치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당신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경험하고 싶은지 결정하는 동시에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미래에 큰 제약을 받는다. 당신은 당신에게 행해진 것으로 뭔가를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트라우마의 영향력에서 절대로 자유롭지 않다. 당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도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 놀라운 회복력을 지닌 동시에 실망이 조금만 건드려도 희망과 믿음이 먼지로 사라질 만큼 취약하다. 이는 바로 당신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지는 당신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인생이 촉발한 불안을 일으키는 의사결정에 직면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적절한 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언제나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짧은 기간 동안 삶을 의미 있고 훌륭하게 만들고자 길을 걸어간다. 당신이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은 언제나 당신이 내린 결정과 그 결정에 전념하고 끝까지 실행한 용기의 결과물이다. 인생의 모든 과정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은 저절로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결정과 선택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결정과 선택은 어지럽고 두려운 일이다. 앉아서 후회만 하는 인생을 살기보다는 겸손 지대에서 겸손하고 용기 있는 선택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는 삶을 누려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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