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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
<헤어질 결심>을 보는 동안 자주 웃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이십 대였을 것이다. 옆자리의 나이든 여인이 영화를 보면서 쿡쿡 자주 웃었다. 매우 거슬렸던 기억이 있는데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내가 그랬다. 유머가 아닌데도 사소한 부분에 웃음이 났다. 그때 그 나이든 여인도 그래서였을까, 젊음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삶의 어느 부분이 보여서? 가령 조사실의 비싼 초밥, 카드를 주며 싼 거 먹으라고 후배에게 말하던 해준이 조사하던 서래를 위해 초밥을 시키고 후배는 우와 저것 처리 돼요? 말한다.
초밥을 먹기 위해 책상을 정리하고 다 먹고 나서 다시 책상을 정리하는 모습이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일목요연해 보였다. 서래와 해준의 합을 보여주던 장면. 아마 박찬욱 감독은 그 장면에서 그들의 마음을, 사랑을, 혹은 내밀한 서로에 대한 감정을 담지 않았을까? 어떤 은일한 눈빛보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는 일상에서 감정을 잡아내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영화였다.
헤어질 결심은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것인가, 앞으로 할거라는 건가, 아니면 절대 그런 결심 따위는 안 하겠다는 것인가, 절묘한 제목에 어울리게 해준의 사랑 고백은 말대신 자신의 삶의 가치를 저버리는 행위로 보여준다. 서래의 알리바이를 돌려주며 깊은 바닷속으로 던져버리라고, 해준은 말한다.
書香이 풍기는 대사에 탕웨이가 있다. 한국어가 서툰, 미묘한 억양의, 그리고 건조한 번역어들, 그 모든 것들이 산그리메와 안개처럼, 잘 지은 오래된 고택의 지붕처럼 서로 레이어드 되면서 영화를 기품있게 만들어준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해준은 남편의 죽음 앞에서 지나치게 담담한 서래를 이런 표현으로 감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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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나눠보자면 두 챕터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서래는 두 번째 남편과 안개 가득한 도시ㅡ무진을 연상케 하던ㅡ해준이 사는 이포로 이사한다. 그리고 해준의 사랑 고백으로 해준을 위협하려던 두 번째 남편을 기묘한 방법으로 죽인다. 충분히 감정 이입이 되던 블랙 위도우 탕웨이.
몇 년 전 영상자료원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들을 기획 상영한 적이 있었다. 부지런히 다니면서 제법 봤는데 그때 어느 영화에선지 박찬욱 감독을 봤다. 오, 감독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구나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영화를 영화관에서 가장 많이 볼 사람이 감독이겠지, 생각했던 기억도 났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인 <아가씨>와는 엄청 다른 영화, 물론 그 영화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지만 늘씬하고 예쁜 젊은 여자의 몸이 좋은 영화보다 앞섰다면 <헤어질 결심>은 탕웨이의 손가락만으로 사랑을 이야기 하는 러브 스토리. 요즈음처럼 부박한 시대에는 잘 보이지 않는 플라토닉 러브라고나 할까, 거기다 매우 리얼리티해서 거기 멜로를 넣어도 전혀 말랑거리지 않다.
해준과 서래의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사랑으로 인한 그들의 븡괴된 삶을 그린 영화였다. 문장 같던 대사는 삶의 결을 촘촘히 느끼게 하고 소소한 스토리의 연결은 섬세하고 자연스러웠다. 같이 침대에 눕지 않아서 더 절절하고 충만해지는 사랑은 재미와 함께 영화에 더욱 집중하게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서래를 부르며 파도 위에서 헤매고 뒤뚱거리던 해준의 모습이 상투적이면서 과하지 않나를 생각했는데 그 파도를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파도는 천천히 느린 듯 다가와 서래를 삼킨다. 그리고 해준은 서래를 심킨 파도 위에서 서래를 찾는다. 파도는 더욱 세차지고 검푸르러지고.....칸느 박은 아마 해는 저물어가고 세찬 검푸른 파도로 서래 없는 해준의 인생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을만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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