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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68)해방 이전 한국성결교회의 만주 선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7.07 16:47
  • 호수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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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 (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한인들이 만주로 이주하여 재만 한인사회를 형성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한인들이 만주로 이주하게 된 중요 동기는 앞서 잠시 논급했듯이 경제적 어려움이었고, 농업 이민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 전후에는 구국(救國)과 애국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정치적인 이민이 이루어졌고, 종교적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주하는 복합적인 동기도 나타나고 있다. ‘표 2' 는 당시의 재만 한인들의 이주 동기를 잘 말해 주고 있다.

                              표 2. 만주 조선인 이주자들의 이주 동기와 이유

 ‘왜 만주에 왔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201가구 농가주(農家主)와 조사원 사이에서 직접 행해진 답변을 근거로 해서 통계를 낸 이 도표는 이주의 주원인으로 가난과 생활난 등 경제적인 난에서 만주 이주가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주로 정치적인 동기보다 경제적인 동기로 만주로 이주해 온 재만 한인들은 자연적인 악조건과 인위적인 압박 속에서 생존과 개척을 위해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재만 한인들에게 놓여진 현실은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극히 일부 한국인들이 어느 정도 향상된 사회, 경제적 지위를 얻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재만 한인들에게 인위적인 생활 압박조건으로 나타난 각종 곤란한 점은 대체적으로 일제의 재만 기관에 의한 간섭과 통제, 중국 정부당국 및 관헌, 중국인 지주와 일반 민중에 의한 법적 지위 불인정이나 무리한 행패, 마적(馬賊), 비적(匪賊) 등에 의한 생명과 재산의 위협, 공산주의자들의 잔인한 살상,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 자금 염출을 위한 무리한 요구, 또한 재만 한국인 상호간의 반목(反目)에 의한 갈등과 위협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정치적인 불안과 생명에 대한 신변 위험과 생활난이 주종을 차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의 대만 한국인 이민 정책의 결과로 이주하였던 재만 한인의 일부는 이러한 인위적인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귀환하였으나, 대부분 한국인들은 끝까지 참고 이겨 나갔다. 다음의 글은 만주 야소교 전문학교의 목사인 쿡(W. T. Cook)이 선교부에 보고한 글 중의 일부(필자가 임의로 독자의 편의를 위해 현대체로 바꿈)이다:

“만주에 오는 조선이민(朝鮮移民)의 고통은 심지어 그들의 불행을 주로 하는 사람조차 완전하게 묘사할 수가 없다. 겨울날 영하 40도의 혹한 중에서 흰옷(白衣)을 입은 말없는 군중은 혹 십여명, 혹 이십명, 혹 오십명씩 떼를 지어서 산비탈을 기어 넘어온다. 그들은 만주의 나무숲(樹林)이 많고 암석이 많은 산근처(山邊)의 척박한 토지로부터 악전고투(惡戰苦鬪)를 하면서 한가닥의 생로(生路)를 얻기 위하야 신세계(新世界)를 찾아 저와 같이 몰려오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꾸준한 노력으로서 중국인의 논밭(田地) 위에 있는 산자락 불모지를 괭이와 호미질을 하여서 손으로 심고 손으로 거두며 흔히 삶을 유지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할 풀뿌리 나무껍질(草根木皮)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식량부족으로 말미암아 죽었다. 부인과 어린이들 뿐 만 아니라 청년들도 얼어 죽었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 가운데 또 질병이 닥쳐왔다. 여러 명의 조산인이 맨발로 강변의 깨여진 얼음장 위에 서서 바지를 걷어올려 고두자나 깊은 얼음장이 섞인 강물을 건너가서 저편 언덕에서 바지를 내리고 신을 신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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