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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종교개혁정신 회복해야자기가 태어난 날짜를 모르거나 누가 낳았으며 어떻게 자랐는지를 모르면 사생아다. 마찬가지로 현재 자기의 교회의 탄생과 자라온 과정을 모르면 신앙사생아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게 무장된 신앙인(딤후 3:15~17)은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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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22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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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태어난 날짜를 모르거나 누가 낳았으며 어떻게 자랐는지를 모르면 사생아다. 마찬가지로 현재 자기의 교회의 탄생과 자라온 과정을 모르면 신앙사생아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게 무장된 신앙인(딤후 3:15~17)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사악한 통치자는 백성이 우매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종교개혁 이전 교회 권력자들의 바람이었다. 역사는 좌우로 치우치던 편중을 바로 잡아 가려는 노력의 과정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해 보고 싶다. 종교개혁의 횃불은 1517년 10월 31일에 당겼다. 이것은 본래의 교회 회복 운동이었다.

그러면 종교개혁 이전의 시대는 과연 어떠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보다 전통이 권위를 장악했다. 믿음보다는 선행을 강조했다. 또한 교황 왕국을 건설했다. 중세교회의 교권 타락과 신앙의 변질은 극에 달했다. 그 모습은 교황청의 사치, 도덕적 타락, 교회 감독·사제들의 방종, 신앙의 무속화(성자 숭배,성지 순례, 세례명, 성물 숭배) 등으로 나타났다.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사제들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그 후 종교개혁의 모습은 이렇게 바뀌었다. 중세교회는 교회만이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한 반면, 개혁자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세계가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개혁자들의 기초는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령이었다. 그리고 개혁교회의 원리는 말씀 선포, 성례, 권징이었다. 즉 교회당을 더 화려하게 지어 중세 로마교를 본받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내용을 중요시했던 것이다. 그들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러면 이들이 집중적으로 저항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 내용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이 집중했던 것은 성당을 크게 짓기 위해 돈을 밝히면서 팔았던 ‘면죄부’와 교권을 휘둘렀던 ‘교황권’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면죄부를 왜 팔았는가? 성 베드로 성당을 비롯하여 성당을 크게 짓기 위해서였다. 왜 교황권을 강화했는가? 교회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한국교회에 안타까운 것은 건축헌금 면죄부와 소 교황권 비슷한 세습 권력과 전횡의 모습이 한국교회에 보인다는 것이다. 

많은 지지자들은 루터의 행동에 감동했다. 그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교황의 폭정과 타락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다른 속셈으로 귀족이나 황제는 자신의 권력을 이 기회에 회복시켜 보려고 루터를 통해 교황에게 대리항거를 시도하려는 속셈까지 가지고 있었다.

1521년 4월 16일 루터는 재판장인 브롬스의회에 입장했다. 거대한 내부는 웅장하다 못해 위압감을 주었다. 루터는 약간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눈빛들을 의식하며 루터는 의회 한가운데 섰다.

“내용을 취소하겠는가 아니면 여전히 지지하겠는가?”

“나는 주님의 말씀으로 대답하겠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알지 말라. 도리어 싸움을 주러왔고 교황의 타락을 경계하려 한다. 이제까지 하나님은 나를 지켜 주셨다. 그분은 나를 당신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셨다.”

루터는 그날 하나님을 체험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체험해 잘못된 각종 행태를 버릴 뿐만 아니라 잘못된 압력에 ‘정의’로 대답하는 삶을 기대한다. 

이 시대에 누가 루터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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