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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주간에 열리는 성령컨퍼런스492주년 종교개혁 기념 주간에 전국 성결교회 목회자들만의 영성 잔치가 벌어진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10.2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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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주년 종교개혁 기념 주간에 전국 성결교회 목회자들만의 영성 잔치가 벌어진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과정을 거쳐 드디어 2009성결교회목회자성령컨퍼런스(대회장 원팔연 총회장 대행)가 10월 26일, 성황리에 개막된다. 성황리에 개막된다는 근거는 경주 교육문화회관의 수용 능력을 초과할 가능성이 많아 가까운 호텔도 예약할 지경이라는 관계자의 전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국 지방회 설명회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대거 참여를 결의했고, 서울신대 총동문회와 여교역자전국연합회, 전국사모회 등도 전원 참석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면 어느 지방회가 제일 많이 참석할까? 물망에 오르고 있는 곳은 70% 이상 참석을 주장하고 있는 인천남지방회와 자신들이 제일 많이 참석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참석 준비 모임을 활발하게 갖고 있는 서울서지방회, 둘 중의 한 지방회가 참석 1위를 달릴 것이라는 평이 많다.

주최 측에서 제일 많이 참석하는 지방회에게는 회비 감면 등의 혜택과 시상을 주는 이벤트를 준비하였더라면 좋을 뻔 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대형 전광판에 전국 46개 지방회를 참가자 숫자에 따라 순위 별로 나열하여 공개하면, 어떤 지방회가 성령 충만하며 교단을 사랑하는지를 가시적으로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행사를 앞두고 웨슬리언 성결교회 목회자들은 웨슬리가 “설교자 자신의 영성이 중요하다”고 한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 주장을 하게 된 배경은 웨슬리가 바다에서 폭풍 가운데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일 모라비안 교도들의 신앙적 태도를 보면서 충격을 받은 이후부터다. 그가 모라비안에게 충격을 받고 런던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모라비안 교도들을 찾아가서 구원의 확신에 대해 배우게 된다. 또한 그는 조지아에 도착해서 독일 모라비안 선교사인 스팡겐베르그로부터 신앙적인 자문을 받는다.

「존 웨슬리 일기」(The Journal of John Wesley, 김영운 역, 크리스천다이제스트 刊)에 보면 1736년 2월 7일 일기에서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압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 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셨을 것으로 희망합니다’ 그는 ‘당신 자신을 압니까?’ 나는 ‘압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빈말 같아서 두려웠다”

웨슬리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성령컨퍼런스에 참여해야 한다.

웨슬리는 다시 런던으로 되돌아 와서 내적인 구원의 확신문제 때문에 모라비안 선교사 페터 뵐러(Peter Boler)에게 신앙적인 자문을 구한다. 그는 뵐러와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인 믿음이 결여된 것’을 자각하게 된다.

1938년 8월 4일 일기에서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가 신앙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우리를 구원받게 해줄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즉시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설교를 그만 두어라. 너 자신이 믿음이 없으면서 누구에게 설교를 할 수 있느냐?’ 원점에서부터 시작을 하기는 하였어도 이 새로운 교리(믿음)에 관하여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성결교회 웨슬리언 목회자들은 이번 종교개혁 기념주간에 열리는 성령컨퍼런스 때 이러한 웨슬리와 같은 양심의 질문을 해야 한다.

한편 목회자들이 똘똘 뭉쳐 감독 정치인 웨슬리언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492년 전, 종교계의 부패가 종교 개혁에 불을 지폈고, 아비뇽 유수 등으로 인한 황제권의 강화로 인한 교황권의 쇠퇴는 새로운 교회 정치 제도를 요구하게끔 했다. 이와 함께 1347년부터 1358년까지의 페스트의 엄습은 유럽을 황폐화시켰다. 또한 백년전쟁은 1450년경에 끝났고, 장미전쟁은 1455년 초 영국을 양분시켰다. 이로 인해 유럽은 폐허가 됐다.

그리고 성직자의 무능력과 세속적 무관심, 그리고 교회의 타락은 개혁의 빌미를 제공했다.  콘스탄츠 공의회에 참가한 주교들이 교황의 정치적인 특권과 탐욕, 중앙집권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게 됐다. 공의회 때 요한네스 23세는 사생활을 조사하겠다는 위협을 받자 경쟁 교황들이 동시에 사임하면 자기도 사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당시 돈 벌이 수단으로 교회 관련 건축을 일삼았다. 1515년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의 성 베드로성당 건설을 위하여 면죄를 고시하고, 독일에서 면죄부의 판매를 허락하였다. 마틴 루터는 “금전으로 면죄부를 구입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1517년, 종교개혁운동의 도화선이 된 ‘95개조’에서 로마에 의한 독일의 재정적 착취를 비판했고, ‘이신칭의’라는 새로운 신앙원리를 제시했다. 또한 교황의 세속적인 욕심으로 인한 야욕을 비난했다.

이후 루터와 칼빈 시대를 지나 존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 받아 수입 교단인 감리교와 국산 교단인 성결교가 감독 정치를 채택하여 목회자 중심으로 종교 개혁 정신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전국장로회가 이번 <성결교회목회자성령컨퍼런스>를 적극 돕는 것은 성결교회정신을살리는 것이다.

목회자의 강력한 영성으로 이끌어 가야할 성결교회에서 전국 목회자들이 처음으로 모인다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번 성령컨퍼런스 이후에는 초기 성결교회처럼 성령 충만하여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목회자들이 되길 바라는 것이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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