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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된 자가 더 큰 심판을초대교회 선생들은 높여 존경을 받았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선생들이 선지자들 다음으로 쓰임 받았다. 교사들은 한 교회에서 머무르며 개종자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가르쳤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이 있었다. 즉 어떤 자는 그리스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10.1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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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짖고 닭은 울고 성도는 값을 해야

초대교회 선생들은 높여 존경을 받았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선생들이 선지자들 다음으로 쓰임 받았다. 교사들은 한 교회에서 머무르며 개종자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가르쳤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이 있었다. 즉 어떤 자는 그리스도교를 유대교 한 종파로 가르쳤고 할레를 꼭 받아야 하며,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 받는다고 했다. 어떤 자는 남들을 가르쳤으나 자기는 행치 못하였다. 어떤 자들은 군중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거짓 교훈을 가르쳤다.

야고보는 이런 거짓 교사가 더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다. 선생은 말소리가 그의 행동보다 더 커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귀 보다 눈이 밝고 듣기보다 빨리 본다. 야고보는 선생을 자원하여 그 직무를 택하였으나 선생은 특별한 책임을 져야 되며 만일에 실패하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을 경고 하였다. 우리 주변에는 더 큰 심판 받아야 할 교사가 부지기수다.

초등학생 제자를 유괴해서 살인을 하고 또 성폭행하고 알몸 사진까지 찍어온 인면수심의 전직교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정치하는 어느 정당 총재는 민주주의 운운하는 사람치고 민주주의 파괴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이웃을 돕자고 소리치는 사람치고 이웃을 돕는 자가 없다. 사랑한다고 떠든 사람치고 별로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여러분 사랑해요’ 하면서 부부애를 노래하던 부부가수가 서로 갈라서고 말았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수없이 책망했다. 책망 내용은 말소리는 크지만 행동이 보이질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은 본받고 행동은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원래 바리새인이란 구별된 무리요 거룩하고 세속과 분별된 무리다. 옛날에 어느 아버지는 그 아들 이름을 구원이라고 지었다. 자기 아들이 구원을 꼭 받아야 하였기에 구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름 잘 지어서 이름값을 하고 이름만큼이나 성공한다면 얼마나 이름을 많이 빛낸 사람들이겠는가.

세상과 구별되고 죄악과 구별되어진 이름대로의 바리새인 이었다면 ‘화있을진저’라고 책망 받지 않았을 것이다. 성도는 구별된 무리이다. 이름대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된다.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빛이라고 하셨는데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어찌 성도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성도는 또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답지 못한다면 어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설 자리 앉을 자리가 있는데 아무 곳에서 서고 아무 곳에서 앉아서야 되겠는가?

개는 짖고 닭은 울고 성도는 값을 해야 된다. 야고보는 ‘선생되지 말라 만일에 선생이 되었다면 더 큰 심판을 받아야 된다’고 하였다. 야고보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비하하고 자기가 독점하려고 이 경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으로서 무거운 도덕적 책임을 잊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교사의 중임보다 그의 권위를 생각하는 자들을 경고한 말이다.

교사나 목사가 된 이유가 존경을 받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참된 동기라고 말 할 수 없다. 이 두 직업은 인격을 다루는 일이다. 그 책임이 크며 그것이 실패했다면 치유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소명의식과 책임감으로 넘치지 않으면 목사나 교사직을 택하지 말아야 한다.

선생된 자의 심판이 크고 두렵다. 알고도 행치 못하는 죄가 가벼울 수가 있겠는가. 누구든지 자기 친척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의 배반자요 불신자보다 악하다고 하였다. 차라리 천국과 지옥을 모르고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다면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을 알면서도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면 그날에 무엇이라고 변명 하겠는가.

누구나 심판장 되신 하나님 앞에 서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라. 화려한 부흥사의 인기보다 양 한 마리를 위해서 싸우는 다윗의 성실함을 더 부러워해야한다. 선생된 자의 심판은 듣기만 해도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바울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렵다’고 했다(고전9:27) 이 말씀이 선생된 지도자들의 좌우명이나 경고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선생된 자의 심판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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