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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성결교회, 순교자 김동훈 (9)김동훈에 대한 연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1.07 14:52
  • 호수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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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교수(평택대학교 신학과 교회사, 현 총장직무대행)

필자는 평택대학교에서 한편으로 교수를, 또 한편으로는 2013년 3월부터 평택대학교회 담임목사직을 맡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목회를 하게 되었다. 교수와 목회라는 두 사역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지금은 목회에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는 형편이 되었다. 목회현장에 실제 들어와 보니 신자들의 요구가 만만치 않았다. 신학 공부의 궁극적 목적이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하면, 목회사역이 신학교수에게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역에 대한 보상 심리로 내심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교회가 매년 여름이면 수련회를 하게 되는데, 2014년 여름 전교인수련회의 주제를 ‘순교자의 신앙을 따라’로 정하고 장소를 증도에 있는 문준경순교기념관으로 정했다. 신자들은 이 주제가 너무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순교는 참 무거운 주제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주제이고 피해서는 안 되는 주제라고 생각했기에, 수련회 내내 순교에 관하여 신자들과 은혜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에 원고 청탁을 거절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한 이유가, 나의 내면에 자리 잡은 순교자와 순교 신앙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이에 대한 일종의 모방(imitatio)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활천 편집으로부터 김동훈(金東勛) 전도사에 대한 자료를 받고 읽어보니 참으로 잔잔한 감동이 몰려왔다. 유명하지도 않고 돋보이는 인물도 아니고 신학에 족적을 남긴 분도 아니다. 요셉의 신앙과 스데반의 신앙의 합류가 이 젊은 전도사의 신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신앙과 자리를 지켜왔기에, 성결교회가 이름만의 성결이 아닌 실천하는 그 자체로 오늘까지 아름다운 신앙의 전승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고 본다.
김동훈(1897-1928) 전도사는 조치원교회 담임목회 시절 자기를 유혹하는 여인의 유혹을 물리치고, 그 여인의 무고(誣告)로 그 여인의 남편으로부터 무참히 폭행을 당해 결국 1928년 10월 1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김동훈 전도사


기도의 사람이던 김동훈 전도사는 조치원교회에 부임하자마자 평소 습관대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하루에 6-7시간 기도하는 기도의 용장이었다. 새벽기도뿐 아니라 매일 밤 혼자 교회당에서 자정까지 기도하였으며, 어떤 때는 산에 가서 1주일씩 금식기도도 하였다. 그런데 김 전도사를 연모하던, 조치원 일대에 행실이 좋지 않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18세의 어떤 여인이 밤중에 길을 가던 김 전도사를 유혹하였으나, 그는 이것을 뿌리치고 교회에 와서 기도하였다. 이에 김 전도사는 여인에게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속히 교회당에서 나가라고 하면서 달래기도 하였지만, 이 여인은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김 전도사는 할 수 없어 “당신이 정말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돌아가지 아니하면 내가 당신의 남편에게 고발하겠노라.”고 하자, 이 여인은 놀라서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여인은 마치 보디발의 아내처럼 남편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 여인의 남편은 조치원에서 소문난 깡패였는데, 아내의 말만 듣고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김 전도사를 폭행하였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김 전도사는 피투성이가 되어 길에 쓰러지고 말았다. 남편이 돌아와야 할 시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자, 김소순 사모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길에 쓰러져 있는 남편을 발견한다. 즉시 인근 병원으로 데려가 응급치료를 하였으나, 더 이상 고칠 수 없어서 세브란스의원에 이송된 후 5일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928년 10월 19일 김 전도사의 모교인 경성성서학원 강당에서 그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는 자신은 아무런 죄를 범하지 않았고 오히려 폭행당하여 죽게 되었는데도, 자신의 폭행한 사람을 고소하자는 이들에게 “죄를 용서한다는 구원의 복음, 원수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어찌 고소를 하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원수 사랑을 실천하였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의 소식을 전해들은 조치원 일대의 사람들은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그의 신앙과 인격에 감화를 받았다. 그의 추도식(1928년 10월 28일 조치원교회)에 자진해서 조사(弔詞)를 한 후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로 그는 수많은 이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죽음으로 증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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