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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초의 전킨선교사 (22)전주에서 전킨의 후반부 사역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1.07 14:47
  • 호수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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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킨 선교사(1865년 12월 13일~1908년 1월 2일)

그리스도를 믿는 포사이드 전킨 입장에서는 이렇게 아이들을 길거리에 무심하게 방치하는 일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교도들이거나 아무 소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나 할 짓이었다.
완치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 병원 일을 시켰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포사이드가 아이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서 일곱 명의 다른 아이들이 구걸해 온 음식을 서로 나눠 먹고 있었는데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아이들 일곱 명을 병원으로 데려왔고 전킨과 상의하여 이들에게 입힐 옷과 숙소를 마련하였다. 전킨과 포사이드 의료선교사가 시작한 고아원은 동료 선교사들, 특히 전킨의 물질적인 도움과 전킨 부인의 세심한 배려로 잘 운영되었다.
이 고아원은 언더우드가 서울의 모화관 자리에 세운 고아원과 그 이후 영국인들이 약현동에 세운 고아원 이후 세 번째 고아원이었고, 전라도에 세워진 첫 번째 고아원인 셈이다. 고아들을 돌보는 포사이드 의료선교사의 마음가짐은 아랫글에 잘 나타나 있다.
이교도의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멸망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구세주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작은 부분일지라도 얼마나 멋진 특권인가.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고 마땅히 이루어졌어야 할 많은 일들이 아직 남아있다. 사역은 어려움과 많은 방해 속에서도 이루어진다. 아직 불완전하더라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겸손하게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을 위하여 그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위하여 기도한다.
전주선교부에 부임한 전킨 선교사는 의료선교사인 포사이드(William H. Forsythe)와 함께 고아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기 시작한다. 당시 전주에는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굶주린 아이들이 널려 있었다. 전킨과 포사이드는 그 아이들을 데려다가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일을 시켰다. 일을 시킨 이유는 자립까지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일차적인 도움이 아니라 성장하여 독립할 수 있도록 교육의 차원에서 그들을 돌보았다. 또한 포사이드가 광주를 방문하여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했는데 이를 통해 광주 한센병 환자를 위한 광주와 여수 애양원이 시작되었다.


◆ 전주교회 사역
1895년 12월 테이트 남매에 의해서 시작된 전주선교부는 레이놀즈와 헤리슨이 가세하여 군산과 마찬가지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고 있었다. 1904년 전주선교부 역사상 가장 큰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다. 전킨의 담당 구역인 전주 시내는 전주교회의 정기적인 예배와 함께 거리에서의 전도 그리고 방문객들과의 대화가 주된 사역 방식이었다.
전킨이 담당하게 된 전주교회는 전킨의 부임 이후 크게 성장하였다. 특히 예배당이 너무 작아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1904년 가을에 열린 성경공부반은 사람이 너무 많아 와서 정작 전주 교인들은 교회당 밖에서 예배를 드려야 할 정도였다. 평상시 주일예배도 교인의 다수가 밖에 서 있어야 했다. 그래서 전킨과 교인들은 교회를 새로 짓기로 결정한다. 지금의 전주서문밖교회이다. 새로운 장소는 전주에서 가장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은 서문밖이었다.
전에 있던 건물을 해체하여 옮기고 다시 건축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건물 이전 및 리모델링을 위해 낸 교인들의 건축헌금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전킨은 자신의 명의로 일본은행에서 15%의 이자로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건축비 모금과 건축을 위한 기도회를 매일 진행했고 이 소식을 듣고 미국 버지니아와 뉴욕에서 500불의 헌금을 보내온다. 이 액수는 이자 및 원금을 갚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780평 대지 위에 57평 건평으로 세워진 새로운 예배당은 한양 절충식으로 붉은 벽돌에 유리로 된 창문, 한식 기와로 이루어져 있었다. 좌식 공간을 절반으로 나누어 남자반과 여자반을 구분하였고, 그 사이에 휘장을 길게 쳐서 남녀가 서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새롭게 지어진 예배당에서 전킨은 더욱 사역에 집중한다. 부흥하는 전주서문밖교회에 더 큰 부흥의 불을 지피게 된다.
전킨은 주일 예배 후 오후 시장통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했다. 그리고 전도자로 나선 교인들에 대한 전도 교육도 병행하였다. 1905년 2월에는 전주의 양반 두 사람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는 전도의 열매를 맺기도 했는데 포사이드가 강도에게 피습을 당하던 중에 양반들에게 도움을 받게 되었고, 그 양반들이 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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