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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대책과 차별금지법 반대(33)동성애에 대한 회개를 위한 설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1.07 14:45
  • 호수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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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예수말씀연구소 소장)


Q 10 : 15 그리고,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질 셈이냐? 너는 [그] 음부까지 떨어질 것이다.

예수님은 고라신 과 벳세다에 대한 저주에 이어서 “가버나움아! 하늘까지 높아질 셈이냐? 음부까지 떨어질 것이다”라고 계속해서 심판을 선언하신다. 가버나움은 나사렛에 이어 예수님에게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빈정대는 일과 비웃는 일은 인간사에 어디든지 다반사로 있는 일이지만 예수님께서 소년 시절을 보내며 가업인 목수 일을 도운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는 빈정댐이 자주 들려오는 것처럼, 베드로의 집터가 있기에 공생애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가버나움이 “하늘까지 높아질 셈이냐?”라는 비웃음의 대상이 된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가버나움의 저주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언뜻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유대인이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동성애의 죄악까지도 받아들이고 풍요의 여신을 숭배하는 일이 만연되자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악으로부터 돌아오기를 선언하신 것이다. 가버나움의 위치는 갈릴리 호수 북쪽 고라신 보다는 훨씬 아래의 작은 언덕에 형성된 고을이다. 사해바다가 해발 400m 아래라면, 갈릴리 호수는 그 보다는 형편이 낳아서 해발 200m 아래의 지형인지라 다행히도 헬몬산에서 흘러나온 물을 받자마자 아래로 흘려보내는 덕스럽기도 한 곳이다. 그래서 설교자마다 사해는 받기만 하는 욕심쟁이라 물이 죽고, 갈릴리 호수는 나누어주어서 생명이 살아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 않는가?

왜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저주하신 것일까? 이스라엘에서 사해 다음으로 낮은 지형이 갈릴리의 가버나움인데, 왜 “네가 하늘까지 높아질 셈이냐?”라고 경고하실까? 가버나움이 아무리 발돋움을 쳐도 겨우 골란고원은 해발 600m인데, 그보다 훨씬 높은 모압 산지 1200-1700m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까지 높아진다’라는 표현은 구약의 오바댜 예언을 상기시킨다. 에돔 땅에 거주하던 나바티안족은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공할 때, 길목을 열어주었다. 자기들이 오랫동안 닦아 왔던 실크로드를 바벨론에게 인정받고 계속해서 번영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페트라를 거점으로 한 나바티안 사람들이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들 사이에 깃드는 곳’(오바댜 1:4)에 거주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교만하게 살던 모습을 바로 가버나움 사람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실크로드의 페트라처럼 예수님 당시에 가버나움도 애굽의 해안 길(Via Maris, 이사야 9:1)이 지중해를 거쳐서 갈릴리 호수 북쪽을 지나는 길목에 있어 다메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저주와 경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너는 그 음부까지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가버나움의 저주는 결코 지형과 견주어볼 이야기가 아니다. 가버나움이 ‘높아지는 것’을 저주하자마자 곧바로 ‘음부’까지 떨어지는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을 보아서, 예수님의 말씀은 종교적인 연관성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가버나움에는 지진과 비바람을 견디며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도 아직도 그 형체가 무너지지 않고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유대인의 회당이 건재해 있다. 가버나움 회당 아래 검게 탄 현무암의 거대한 터가, 당시에 백부장이 지은 회당의 자리다. 흰색 화강암 기둥들과 사방의 벽으로 둘러싸인 잔재만을 남겨놓고, 무너진 현재 회당은 4세기 이후에 재건된 것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thumb_IMG_2437_1024.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24pixel, 세로 768pixel

(가버나움 회당: 현무암의 기반이 예수 당시의 터전)

마가복음은 가버나움 회당을 ‘그들의 회당’이라고 여러 차례 지칭하면서 예수님께서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신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부정적인 언급과는 달리, 누가복음은 가버나움 회당을 백부장이 지은 것이라고 친근하게 묘사한다.(7:4)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태복음 8:10)고 하시면서 백부장을 칭찬하실 때, 주위에 있던 유대인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유대 특수주의에 사로잡혀서 원을 그려놓고 그 원의 중심에 유대인을 두고서 원 밖의 이방인을 개와 돼지처럼 업신여긴 유대인에게 가버나움의 저주는 가장 치욕스런 이야기이다. 그 결과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하던 유대인이 일시에 예수님에게 적대감을 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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