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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의 BOOK-LIFE밥도둑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1.07 14:35
  • 호수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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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영 목사  (제일교회 담임)

'황석영’님의 『밥도둑』(출판:교유서가)에서 일부를 옮기며 교회를 생각해 봅니다.

이런 밥은 어떤가, 밤 중에 공부를 하다가 아니면 책을 읽다가 귀찮기는 하지만 속이 출출해서 슬슬 부엌에 나가서 뭔가 먹을 것을 찾는다. 형제들이 많은 집이면 서로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하고, 제일 시장한 사람이 부엌으로 나가게 된다. 밥이 솥 안에 조금 남아 있고 찬장에는 먹던 김치와 고추장뿐이다. 허름한 양은냄비에다 참기름을 두르고 밥과 고추장과 김치를 넣어 비비면서 볶는다. 그대로 숟가락 여러 개를 꽂아서 냄비 채로 들고 방으로 돌아오면 형제들이 저마다 달려들어 퍼먹는데, 밤참의 그 맛은 삼시 세끼와는 다른 특별한 맛이다.

사라진 단어들에서 시대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다이어트가 주요 화두가 된 요즘 시대는 시장기를 느끼게 할 만큼의 여유를 주지 않는 무수한 풍성함 때문인지 “시장한” 이란 단어가 사라졌습니다. “양은냄비”와 “냄비 채로”라는 단어도 그렇습니다. 양은냄비는 독성이 나올 수 있다는 뉴스의 시작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옛날,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아빠들이 엄마의 동의 없이 사 들고 들어와 가끔 라면을 추억 속에서 끓여낼 때나 사용됩니다. 먹을 것이 풍성해진 요즘은 “냄비 채로” 배를 불려야 할 만한 일들도 없어 진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밥 말고도 먹을 것이 넘치는 세상, 배고픈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세대들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밥이 먹거리의 대부분이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냄비 채로” 그래서 한번 먹을 때 많이 먹고 싶었던 때를 추억하게 되는 이야기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어의 사라짐보다 더 서글픈 것은 “형제들이 많은 집”이라는 단어입니다. 많은 형제 속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어떻게 협력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배우던 시대, 그때를 살았던 이들에게서는 서로에게 대한 훈훈한 사람 냄새와 양보와 배려가 자연스레 드러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혼자라는 것이 더욱 편하고 즐거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함께, 여럿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사는 방보다 더 작은 방에서도 형제 서넛, 다섯 여섯이서 한 이불을 덮으며 서로의 온기로 문풍지로 스며들던 찬바람을 이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냄비 채로 비벼진 밥과 김치 한 접시 달랑 올려진 둥근 양철상 앞에 둘러앉아 서로 많이 먹겠다며 바삐 움직이던 숟가락 사이로 돋아났던 부족함의 풍성함을 경험해보지 못하는 요즘은 혼자가 편해서라기보다는 여럿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시대가 된 듯하여 서글프기만 합니다. 사람 냄새가 있고 서로에 대함이 있었는데 요즘 시대는 좀처럼 이런 모습과 배움을 찾아보기 힘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움이 어려운 것일까요? 현대의 조직체는 이해타산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이윤을 추구하지만 자기 수입이 더 큰 목적인 직장공동체나 정보는 있지만, 지혜는 가르쳐 주지 않는 학교 공동체 등은 이런 가족 공동체성을 제공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는 어떠할까요? 주일날 유모차에 탄 아이들을 예쁘다며 안아주고 볼을 비벼주는 어른들이 있는 곳, 일주일에 한 번쯤도 경험해보기 힘든 사랑스러움을 주일 날 교회에 들어서면서부터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여러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들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사람 냄새와 온정을 나누어주는 곳,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형제들이 많은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의 소중함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고모와 삼촌들의 사랑을 마음껏 받고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교회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제의 연합함이 아름답다고 말한 성경의 비밀스러움을 경험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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