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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94)謹弔 석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1.05 18:25
  • 호수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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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참외와 단감 정도이다. 몸에 좋다는 사과나 배 토마토는 거의 안 먹고 딸기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귤도 좋아하지만 새로 개량해서 새콤달콤한 맛이 증가 된 레드향이나 천혜향보다는 그냥 평범한 귤, 그것도 상품성이 조금 떨어지는 굵지만, 껍질이 얇은, 개심심한 단맛이 나는 귤을 좋아한다. 그러니 천상 촌스러운 입맛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입에 맞는 것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려 하는데 여전히 입맛에 맞는 음식만 즐겨 하니 아직 몸철(?)이 덜 든 탓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부터 겨울이면 석류를 즐겨 먹는다. 우리나라 석류와는 다르게 수입산 석류는 귤처럼 늦가을에 익는 건지 겨울철에 주로 보인다. 수년 전에는 한 박스씩 사다 놓고 먹었는데 이젠 비싸서 조금씩 사 먹는다. 에스트로겐이 많아 나이든 여성의 과일이래, 양귀비도 먹었대. 크레오파트라도 먹었대. 식구들에게 말하지만 사실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석류에 관심이 없다. 껍질 까는 것이 귀찮아서 그런가 싶어 가끔 까서 줘보지만 반응이 별로다.

누군가 석류를 마귀할머니의 루비 주머니라고 했다. 그러니 연약한 루비가 터지지 않게 해야 한다. 뒤꿈치를 높이든 자세처럼 아주 아주 조심할 것, 잘못해서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순간에 마구마구 붉은 피를 흘린다. 발레리는 석류를 빛나는 파열이라고 했다. 아마도 발레리는 손길이 거칠었던 듯 싶다. 그러니 파열이 먼저 다가왔겠지. 루비를 모르던 율곡은 석류를 붉은 구슬이라고 했다. 어느 나라에서는 마치 폭탄처럼 생겨서 수류탄ㅡ손으로 던지는 석류 폭탄ㅡ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나희덕의 석류란 시도 생각난다. //(상략) 뒤 늦게 석류를 쪼갠다 도무지 열리지 않는 門처럼 앙다문 이빨로 꽉 찬, 핏빛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네 마음과도 같은 석류를…(하략)

기실 우리나라 석류는 여름날 초록나무 잎새 사이에서 피어나는 주황색의 선명한 꽃이 주는 정한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열매는 작기도 하고 지나치게 시어서 과일 속으로 밀어 넣기에는 눈치도 보이고, 수입산 석류는 먼 나라에서 왔다. 이란 어디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어디쯤에서 자라났다는 표시다. 뜨거운 햇살과 날마다 다함없는 열애에 빠졌을 것이다. 이렇게도 붉게 익으려면…

석류도 개개의 맛이 달라서 어느 것은 아주 달지만 어느 것은 신맛이 강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질리지 않는다. 선명하게 붉은 자태가 귀골이라선지 보암직 먹음직도 하다. 석류를 깨끗이 씻어. 조금 넓은 접시와 잘 드는 과도를 함께 준비한다. 그리고 손에 힘을 뺀 다음 과도로 살짝 양옆을 잘라내야 한다. 그다음 위아래가 잘린 석류에게 아주 곱게 열십자를 그어주어야 한다. 예전에 우리 엄마….언제나 막한 밥솥 위에 밥을 푸기 전 십자가를 그으시곤 했다. 무럭무럭 솟아나던 김과 엄마가 주걱으로 그으시던 십자가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짧은 순간 우리 식구 건강하게 해주옵소서…. 기도하셨겠지. 이제는 엄마도 밥 푸실 일이 없고 나도 하지 않는데 석류에 십자를 살짝 그을 때 마다 밥솥에도 십자가를 그어야 할텐데.... 를 생각하기도 한다. 칼자국을 따라 껍질을 살살 벗겨 석류의 안으로 들어선다. 연미색 옷을 아직도 한커플 입고 있다. 여기서부터 재미가 솔찬한데 어쩌면 먹는 재미보다 벗기는 재미가 더 좋은지도 모른다. 석류를 가볍게 잡고 아주 천천히 벌려낸다. 수류탄이 터지지 않도록, 가운데서 루비가 튀지 않도록, 결대로 석류 지가 벌어지고 싶은 대로, 즉 석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내 아귀의 힘이 아닌 석류 저들이 자신의 결을 따라서 길을 낼 수 있도록, 나는 그저 도화선이 되어야 한다. 결이 아주 중요하다. 결은 일종의 순리이다. 잘하면 구슬 한 알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가끔 몇 알 정도는 실패하기도 하지. 그리고 다시 결을 따라 살짝 나누면 익숙한 집 찾아 들 듯이 석류가 수욱숙 몸을 열어 보인다. 여러 개로 조각난 석류에게서 수줍기 그지없는 연미색 속옷을 살짝 벗겨낸다. 거기 껍질보다 더 붉은 자태들…붉은 루비들 아름다운 구슬들 부드럽기 한량없는 빨간 열매를 한입 입에 담고 살짝 누르면 터지고야 마는 그 달콤하고 그윽한 영롱함, 연푸른 새순 맛, 자라나는 신록 맛, 짙 푸른 녹음 맛, 그리고 화려한 꽃 맛….아니지 바람..비..구름…햇살…..흙…..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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