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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표 목사 '호남 최초의 전킨선교사' 연재(18)군산 선교의 열매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12.01 15:12
  • 호수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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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킨 선교사(1865년 12월 13일-1908년 1월 2일)

1901년 드루는 과로로 인해 병을 얻게 되었고, 본국 선교본부에서 건강을 염려하여 소환 조치를 하였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버지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정착했다. 그가 한국에서 일한 8년 동안 그의 아버지와 가족들은 그에게 단 한통의 격려나 위로편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항만에서 검역관으로 일하면서 한국인 교회에 출석하였다. 미국 입국비자도 없이 수용소로 끌려가던 도산 안창호 부부에게 신원보증을 해주어 입국을 도왔다. 그리고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선교부 본부의 소환 명령을 받고 미국에 돌아간 드루 선교사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 귀국 후에 선교부와의 관계도 단절되고 의사로서, 선교사로서의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드루가 왜 다른 길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 당시 드루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드루는 1926년 67세로 뇌출혈, 동맥경화증, 고혈압으로 사망한다. 사망 열흘 전에 기관지 폐렴으로 입원한다. 드루의 사망진단서를 보면 많은 정보를 추정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사망진단서와는 달리 아내 이름과 부모님의 고향도 기록하게 되어 있다. 부모님의 고향은 잉글랜드 건지 섬(Guerney, England,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여러 섬들 중에 하나)이다.

드루가 군산을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군산의 선교지를 포기하지 않고 선교부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의사로서 발언 권한이 더 커서이기도 하지만, 섬들이 많은 고군산에 자신의 고향이 비슷한 느낌을 가져서 인지도 모른다.

의료선교선(Mission vessel)을 이용하여 고군산 군도와 금강, 만경강의 지류를 이용한 선교에 대한 열정도 배를 이용하여 살았던 자신의 생활 방식과 맞았고, 군산에서 고향을 더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몰려오는 군산인과 조선인들을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진료를 했던 것은 아마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이곳에서 펼치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도산 안창호와 드루

우리는 역사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그 시대 위인의 알려진 결과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 인물이 처음부터 인물이 되었던 것은 아니고 그 인물이 역사에 기록되기까지는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돕는 역할을 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위인 혼자서 능력이 많고 의지가 강해서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인물이 되기까지 이름도 없이 그 위인을 돕고 희생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에 도착하기 전 도산 안창호 선생은,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새뮤얼 마펫 목사로부터 평양 장로교회에서 일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는 “도산은 현실을 무시하고 복음에만 치중하는 선교사들의 활동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현실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몇 년 전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1902년 처음 미국에 도착하고 몇 개월 뒤에 미국 일간지와의 한 인터뷰 기사가 한국 학자 장대한 교수에 의해 처음 발견된 것이다.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장태한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이 1902년 12월 7일자 11면에 도산의 인터뷰를 실은 사실을 확인하고, 지면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1865년 창간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은 현재도 발행되는 미서부의 유력한 일간지다.

1902년 12월 7일『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소개된 도산 안창호 부부의 인터뷰 기사에서 당시로선 드물었던 한인이었기에 안창호 부부는 인터뷰 대상이 됐다. ‘한국, 잠자는 나라’라는 제목의 기사는 한국에 대해서 2/3, 도산에 대해서 1/3의 분량으로 소개했다. 이 인터뷰 기사의 가치가 높은 점은 그 동안 도산 선생의 미국 입국 경로와 행적 등을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산 선생은 1902년 9월 4일 결혼한 지 넉 달 만에 부인 이혜련 여사와 인천에서 배를 타고 도쿄와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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