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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47)Ⅳ. 동양선교회(OMS)의 태동과 발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12.01 14:47
  • 호수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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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운 박사(교회사)  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이 학교의 학생은 매일 밤 전도관에 있어서 멸망할 영혼을 위해 개인적으로 회개를 권하며 개인적 전도법을 훈련하였습니다. 또 생도는 매년 적어도 한 두 번 복음전도대에 참가하여 일본국 곳곳에 가서 현지 전도를 배웠습니다. 학생들이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진실로 새롭게 거듭나는 사람으로 장래 간접, 직접 사역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소명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물론 자비입니다.“

특정 교파에 상관없이 건전한 교단이면 누구나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입학이 허용되었고, 졸업 후에도 초교파적으로 사역이 가능하였다. 이것은 19세기말에 북미에서 세워진 대부분의 성경학교들과 같이 신앙선교운동의 훈련센터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은 한국에서 설립된 초기 경성성서학원에도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동경성서학원에서는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유형들 가운데 4가지 교리적 테마로 나타나는 사중유형인 구원과 성결, 신유, 재림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온전한 복음(Full Gospel, 오히려 초기 일본과 한국에서는 '순복음으로 잘못 번역되어 알려짐) 또는 사중복음(四重福音)으로 불리었다. 19세기 기독교 연합선교회(C&MA)의 창시자인 심프슨(A, B. Simpson)의 저서 Four-fold Gospel에서도 강조되는 사중유형은 대체적으로 성결-오순절운동의 복잡한 발전과정의 마지막 단계이며, 정점으로 이해되었다.

나카다 목사는 사중복음(四重の福音)을 자신이 동경성서학원 초기부터 전파하고, 가르친 내용의 핵심적 부분으로 생각하였다. 동경성서학원은 1905년을 전후로 하여 기존의 일본 전도자 지망생 뿐만 아니라, 동양 여러 나라 즉, 조선, 중국학생들도 받아들여 함께 수양을 시켰다. 조선 사람으로는 정빈과 김상준이 1905년 한국인 최초로 입학하게 되었다.

3. 동양선교회 조직시대(1904-1917년)

1) 동양선교회 조직

중앙복음전도관과 동경성서학원을 통한 초기 시작시대는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교단적인 상태를 향한 운동의 시초로 나아갔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1901년 나카다와 카우만 선교사부부가 일본 동경에 복음전도관과 성서학원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점차 일본인 전도자와 킬보른이 합류하므로 전도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었다.

초기 복음전도관에서 좀 더 조직적으로 발전된 행정체제를 갖춘 선교회 체제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에 부응하여 1905년 11월 동경에서 설립된 것이 동양선교회 (OMS)였다. 동양선교회 조직을 통해 창립멤버들은 한국인, 중국인도 집회에 참가했기 때문에 널리 동양 각 지역에 전도할 것을 계획하였다. 동양선교회는 이름 그대로 일본에서 전개하던 성결운동을 앞으로 동양 여러 나라에서도 전개할 것을 목적으로 한데서 연유가 되었다. 나카다 목사는 동양선교회의 조직을 끝내고 성결운동에 총 매진할 것을 일본 전국에 선포하였고, 동양선교회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 1905년 12월 2일자로 '동양선교회란 무엇인가' 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04년(명치 37년)에 신축한 동경성서학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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