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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59)<제5편> 한국성결교회 성장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11.17 14:13
  • 호수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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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창립 제115년차에 교단역사를 기독교헤럴드가 새롭게 조명하여 전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성결복음에 대한 고귀함을 전하고자 안수훈 목사의 저서 ‘한국성결교회 성장사’를 연재해 드립니다.

제4장 한국교회와 교단분열

제2절 성결교회의 분열

3. 예수교대한성결교회가 분립되다(1)

1961년 5월 1일 “복음진리 수호 동지회”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서와 결의문 내용에는 “성결단체를 진리로 이끌고 나가겠다”라는 결의와 “자유주의 신앙노선인 N.C.C를 탈퇴하는 즉시 기쁨으로 재결합하겠다”로 되어있다.

이때의 성명서와 결의문의 내용과는 달리, 불과 몇 날이 못 되어 1961년 5월 30일 서울 독립문교회에서 “보수총회”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주동자들은 기성 측 인사들의 활동을 세밀하게 검토했으나, 그 결과 도저히 타협점을 찾을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복음진리 수호 동지위원회”를 정치단체로 발전시키게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그 명분을 다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머뭇 거리지 않고 서둘러서 “보수총회”가 결성됨에 따라 기성 측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고, 제16회 총회에서 “연합기관에서 탈퇴보류를 한다”라고 결의는 하였지만, 교단이 두 쪽으로 분열되면서까지 연합기관에 가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N.C.C와 N.A.E에서 탈퇴하자는 호소문을 전국교회에 흩어져있는 대의원들에게 보내고, 서면결의에 이르게 되었는데, 대의원 87명 중, 탈퇴 64명, 보류 8명, 기권 15명으로 연합기관에서 탈퇴하는 것을 결의했으며, 두 개의 연합기관에는 가담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보수총회” 측에서는 또 다른 조건을 내세우며, 총회 임원들의 사퇴와 N.C.C. 산하 단체에서 완전히 탈퇴할 것을 고집하여 마침내 제16회 총회장이었던 김정호 목사가 하는 수 없이 교단의 단합을 위하여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1961년 10월 21일 총회장직을 사퇴하게 된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보수총회 측은 자기들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며 불응한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중립을 고수하며 양쪽 편을 규제하고 있던 O.M.S는 “그해 11월 6일 제16회 총회를 합법적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서울신학교 학생들과 교수들도 제16회 총회를 지지하였고, 각 군목 대표들과 여전도연합회와 주일학교연합회 등이 총회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고 있던, 온건파 인사들은 기성측과 보수측의 중간에서 합동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나 보수 측은 그해 12월 19일 부산 동광교회에서 일방적으로 “합동총회”라는 명분을 내세워 총회를 소집하였지만, 기성 측에서는 참석하지 안 않기 때문에 보수 측의 일방적인 총회로만 끝이 나게 되었다.

이때 부산 동광교회 총회에서는 보수측 신학교를 설립하는 것과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에 가입한다는 결의를 함으로써 성결교단의 분열을 조장하는 총회가 된 셈이다. 이로써 보수 측 부산총회가 끝난 뒤, 기성측은 보수측에게 I.C.C.C.를 탈퇴하고, 돌아오라고 권장하였다.

1962년 1월 13일 O.M.S 총재 유진 어니 박사가 한국에 나와서 보수측의 이명직 목사를 비롯한 양측 대표를 만나 합동을 권유하였지만, 보수측의 불응으로 분열은 점점 굳어졌다. 1962년 4월 보수 측은 제17회 총회를 열고, 교단의 이름을 성결교회가 1921년에 교회로 조직되면서 사용했던 “예수교성결교회”란 명칭을 인용하여 “예수교대한성결교회”라고 했으며, 총회 횟수도 19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제17회 총회를 제41회 총회라고 고쳐서 쓰기로 했다.

일단 1907년 성결교회가 창설된 지 55년 만에 한 뿌리의 성결교단이 두 개의 성결교회로 분열하게 되었고, 형제 교단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고, 당초에 4중 복음으로 시작하여 한 형제로 자라온 한국성결교회가 그동안 수많은 고초를 같이 겪으며 지난 55여 년을 동고동락해 왔는데 N.C.C., N.A.E., I.C.C.C. 등과 같은 외부 연합기관의 영향을 받아 두 개의 성결교단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성결교단이 두 개로 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피차가 성결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피차 양보와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이러한 사정을 더 깊이 파고들어 본다면, 교단의 교리인 4중 복음이 N.C.C., N.A.E. I.C.C.C. 더욱더 중요하지 않은가? 교단이 분열될 때까지 이 논쟁을 붙들고 있을 필요가 무엇이었을까? 교단 분열 60여 년을 뒤돌아보면 그때의 교단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옹졸한 생각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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