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12.3 금 15:43
상단여백
HOME 독자기고 특별기고
생태환경 칼럼(14)디자이너 베이비와 신놀이
  •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 승인 2021.11.25 14:58
  • 호수 533
  • 댓글 0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1998년 개봉된 영화 가타카(Gattaca)는 생명공학자들의 손에 의해 태어난 ‘맞춤아기(a designer baby)’를 주제로 시작된다.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는 태어날 아이의 지능과 신체조건 등 외모까지 마음대로 선별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영화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지만 그 기술의 이면에 숨어있는 생명공학자들의 신놀이에 주목하고 있다.

영화 속 부부들은 생명공학자에게 찾아가 자신의 아이를 가질 계획을 상담한다. 생명공학자는 그들 부부에게 아이의 성별(남여)을 선택하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질병의 유전자를 제거하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이야기이지만 생명공학 기술은 이제 인간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선별하고 태어나게 하는 신놀이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영화에서 유전자를 선별해서 태어난 아이는 자연적으로 출생한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휠씬 빨랐다. 영화 속 부부는 자연적으로 태어난 남자 아이를 양육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남동생 아이를 가지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자연적 출생이 아닌 생명공학 기술의 도움으로 우생학적으로 태어난 남자 아이를 출산했다. 그러다 보니 형제는 서로 다르게 태어났다. 그들 형제가 자라면서 유전자 선별로 태어난 아이는 형의 키를 벌써 앞지르고 말았다. 그렇다면 가타카 영화가 개봉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생명공학 기술의 현주소는 어디까지 왔을까? 

현재 영국에서는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의 캐시 니아칸(Cathy Niakan) 박사가 주도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이 기술은 유전자 가위 기술 다시 말해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 편집 기술로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인간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것은 물론 우수한 유전자만을 선별하여 편집할 수 있다. 물론 영국에서는 치료 목적에 한해서 일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유전병과 같은 질병의 유전자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건강한 유전자로 대체하는 기술을 치료 목적에 한해서 허용했다. 1998년에 개봉된 영화 카타카가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맞춤아기(designer baby)을 서서히 준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 이 기술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문제로 인해 안한다고 말할 정도로 과학 기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M.Sandel)은 유전학적으로 우수한 우생학적 인간으로의 탈바꿈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을 비판했다. 샌델은 인간의 생명을 조작하고 개량하려는 욕망은 선물로 주어진 인간의 생명에 반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비판한다. 샌델은 우연적으로 주어진 운명으로서의 탄생이 선택의 영역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러운 인간의 출생에 대한 상실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인간의 탄생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요 선물로 받아들였던 생명의 거룩한 탄생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거룩한 출생’으로 설명되기 어렵게 되었다. 한 인간의 탄생은 단순한 생물학적인 것으로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탄생 즉 아이가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부터 그 아이 인생의 마감까지 우리는 생명의 가치와 삶의 거룩성을 보존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런 거룩한 가치들이 유전적인 조작과 생명의 기술화로 대체하려는 생명공학 기술의 무도한 도전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만 없을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이들을 인류(human kind)의 기원을 삼으셨다. 이들로 인해 세상의 모든 인간 생명의 시작이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짝을 허락하시고 이들의 연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게 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하나가 되고, 이들이 짝을 이루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신의 섭리이자 놀라운 축복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인간의 생명과 그 탄생이 ‘신의 선물’로 간주되었던 형이상학적 가치의 상실로 인해 우리에게 점점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만약 우리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