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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61)‘출애굽기의 개요’
  • 최종진 박사(구약학)
  • 승인 2021.11.25 17:57
  • 호수 533
  • 댓글 0
서울신대 제13대 총장, 동대학교 명예교수

구약학자들은 출애굽 연대에 통일된 견해가 없이 대체로 다음의 3가지로 분류된 주장을 한다.

1) B.C. 16세기설
반(反)유대적인 이집트 역사가(B.C. 250년경)인 마네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힉소스 족속들이 축출될 때 함께 탈출한 것으로 보고 출애굽 연대를 B.C. 1550년 경이라 주장한다.

2) B.C.15세기설
학자들 간에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주전 15세기경에 출애굽 사건이 있었다고 보는 학설이다.
이러한 주장의 성서적 근거는 사사기 11장 26절과 열왕기상 6장 1절이다. 입다(사사기 11장 1절부터 12장 7절)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때 (B.C. 1100년경)에 “이스라엘이...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 지 300년 이어늘 그동안에 너희가”하여 모압 땅의 도시들을 취한 것이 300년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 모압 지역을 이스라엘이 점령한 때를 1400년경으로 봐서 주전 15세기경을 출애굽 연대로 본다. 


솔로몬 왕이 즉위 4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한 해가 출애굽 한 지 480년이 된 때라고 말한다(열왕기상 6장 1절). 솔로몬 치세 연대를 B.C. 961/960, 931/922로 본다면 (961/960+480=)B.C. 1441/1440 경이 출애굽 연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는 투트모세(Thutmose III) 3세가 애굽을 통치하던 시기이다.

고고학적 증거로는 고고학자 가르스탕(J. Garstang)이 여리고 발굴 후, 여리고(Tell es-Sultan) 지역이 주전 1400년경 이스라엘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봐서 출애굽 연대를 1440년경으로 주장했다.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B.C.1490-1436경) 때의 레크마이어(Rekhmire) 대신의 무덤 벽화에 벽돌 굽는 노예 모습이 있다.

이 벽화에 감독들이 “매가 내 손에 있으니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고 되어 있어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 고역 생활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출애굽기 1장). 그래서 성서적 근거와 일치하게 이스라엘인들을 강제 노역시킨 바로가 투트모세 3세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주장이다.

이 학설은 Lefbure(1896). H.R.H. 홀(1900). A.H. 가디니(1913). 그리고 T. Eric Peet(1922)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특별히 T.H. Robinson과 Joseph. P. Free, 그리고 M.F.Unger, J.J.Bimson등이 지지하고 나섰다.

3) B.C.13세기설

a) 출애굽기 1장 11절에 비돔성과 라암셋성을 건축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기록에 의해 람세스 2세(Rameses II: B.C. 1290-1224)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 시대에 속한 이집트 비문에 아페루(Aperu)라는 노동자, 혹은 직업 군인으로 고용된 무리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었다. 아마르나 서판(Tell el Amarna)의 ‘합비루’(Habiru)와 ‘아페루’(Aperu) ‘히브리’(Hebrew)가 언어학적 관련성이 있다고 봐서 이 ‘아페루’를 이스라엘인들이라 본다.

b) 메르네프타(Merephtah: Ramses II 세의 후계자로 B.C.1224-1211경)의 승전 비문에 ‘이스라엘’이란 말이 언급되었다. ‘메르네프타’가 정복한 팔레스타인 지역 백성의 명단에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메르네프타 즉위 5년째, 즉 1220년경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있었고 출애굽은 그 이전이어야 한다고 본다.

c) 성서의 열왕기상 6장 1절의 출애굽 후 480년 만에 솔로몬 성전 건축에 대한 해석을 문자 그대로가 아닌 세대(generation: 1세대=40년 혹은 25년)로 뜻해서 대략 12대를 뜻한다고 봐서 실제는 300년이라고 주장하여 출애굽 연대를 주전 13세기로 주장한다.

이 주전 13세기설은 Lepsius(1849), de Rouge(1867), Elinders Petrie(1911) 등이 받아들었고, 최근에 와서 W.F.Albright(1940), G.E. Wright(1957), John Bright, G. W. Anderson, Yadin 등이 받아들였다. 이상의 학설들은 모두 성서적, 고고학적 근거로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들이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여 난제로 남는다. 그러나 여러 가지 논증을 통해 열왕기상 6장 1절과 사사기 11장 26절에 근거한 주전 15세기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5. 모세의 인물

오경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모세에 대해서는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에서만 알 뿐이다.

1) 모세의 이름

모세 이름의 배경은 이스라엘인에 대한 이집트의 압제를 전제한다. 남자아이의 출생은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자 모세의 어미는 갈대 상자에 아기를 넣어 나일강에 버린다. 바로의 딸이 그를 건져내어 양자로 삼았다(출 2장 7절부터 10절).

최종진 박사(구약학)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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