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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87)단풍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11.10 11:54
  • 호수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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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우리 동네에도 단풍이 내려앉았다. 자주 걷는 경의선 일산 숲길도 어느새 짙어졌다. 노랑과 주황, 그리고 붉음이 깊어간다. 초록과는 대비된 그 현묘함이 새삼 삶을 생각하게 한다. 어디에 저런 색이 숨어있었던가, 지면서 저다지도 아름다운 이치는 무엇인가, 사람의 황혼도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가을은 순간에 스쳐 지나간다. 가볍기 그지없다. 그러니 가을이 짧듯이 단풍 구경은 가벼워야 한다. 지인들과 함께 양평 서후리 숲을 찾았다. 같은 경기도지만 좀 먼 거리, 그렇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다. 동네 단풍도 아름답지만 다른 동네 단풍을 기웃거려 보는 것도 가을의 한 정취다. 훠이 훠이 먼 길 찾아 떠나는 무거운 여행이 아니라 살짝 스치듯이 반나절쯤 떠나 보는 것, 미사리에서 점심을 먹고 북한강을 따라 오르다 보면 숲으로 향하는 꼬불거리는 길이 나타난다. 차 두 대가 비껴갈 수 없는 조그마한 길, 가을을 찾기에는 그런 길이 좋다. 거기 아름다운 가을 숲이 펼쳐질 것이다. 협착하여 이리저리 구부러지는 좁은 길을 가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말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살짝 두려움이 스친다. 너무나 넓고 편안한 길에 길들어가는 게 아닌가, 네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좁은 길을 거의 걷지 않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숲을 무척 좋아하지만 꾸며진 숲은 싫다. 푸나무가 자연이듯이 숲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야 숲이다. 서후리 숲은 자연스러웠다. 숲에 사람 다니는 길을 조그맣게 만들어주고 길 주변 빈자리에 나무를 심은 정도였다. 모든 자연스러움에는 부정형의 거침이 존재한다. 자연을 찾는 것은 그런 부정형의 아름다움을 찾아 내 안에 심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원하지 않는 것들이 나를 선하게 이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가을은 그 어떤 계절보다 더 깊이 세월에 대해 사색하게 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확연히 적은 즈음에야 더 말해 무엇하랴,

역광 속에서 바라보면 단풍은 더욱 아름답다. 빛이 색이란 것을 설명해주고도 남는다. 좋아하는 느티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색도 가지가지다. 느티나무의 단풍은 얼핏 보면 노랑색인 것 같으나 주황빛으로 익어가기도 한다. 화살나무 단풍은 이르게 분홍과 붉은색을 띠더니 다시 갈색을 머금은 붉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은행나무는 이미 샛노란 빛으로 짙어졌다. 처음 연노랑으로 물 들 때는 마치 색이 주변으로부터 오듯이 주변조차 노랗더니 탁한 노랑으로 변해간다. 올핸 난데없이 은행나무 아래 초록색 그물로 만들어진 열매 받이가 생겨났다. 지인의 말로는 한그루에 60만 원 정도 들여 설치한 거라는데 굳이 약간의 냄새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썩 유쾌하지 않더라도 그저 가을의 냄새러니 지나갈 수 없을까, 아주 작은 것도 참지 못하는 사람의 성정이 보여 씁쓸하다.

정점의 화려함 속에서 단풍은 지는 일만 남았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거침없이 떨어져 내리리라, 날카로운 비수에 베인 것처럼 거침없이 질 것이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명품 옷을 걸치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궁궐 같은 집에 거한다고 할지라도 오천 원짜리 옷을 입은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분 앞에 서리라. 그러니 솔로몬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들의 백합화를 묵상해야 할 것이다. 들의 백합화는 아네모네를 비롯한 아름다운 들꽃들의 일반적인 표현이기도 하니 단풍 역시 들의 백합화다.

굵은 플라타너스도 이파리가 너울거리며 떨어져 내린다. 금방 떨어져 아직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플라타너스 잎을 나도 모르게 살짝 밟았다 사그락거리며 부서지는 소리, 우리도 죽음 앞에서 저 나뭇잎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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