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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42)III.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10.20 18:06
  • 호수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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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교회사)  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세 번째는 신유(神癒)의 강조였다. 심프슨의 신유 체험은 신유가 사도시대를 마지막으로 종결되었다는 장로교단의 교리와 상충되는 것이었다. 이 일로 인해 심프슨은 동역자들로 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고, ‘13번가 장로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그는 진부하고 형식적인 장로교를 떠나 자유로운 성령의 역사에 모든 것을 위탁하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였다. 심프슨은 신유 사역에서 믿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속죄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는 만약 질병이 인간의 타락으로 온다면 그것은 구원자에 의하여 원상태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으며, 이것의 결론을 이사야서 53장 4~5절, 마태복음 8장 17절, 시편 103장 2~3절, 출애굽기 15장 25~26절과 같은 성경구절 들로부터 이끌어냈다. 따라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바탕으로 신유론을 주장하며,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죄와 질병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사죄와 신유의 가능성이 주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사중복음(四重福音),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신유에 대한 심프슨의 강조는 1894년 그가 강사로 초청받아 설교한 집회에서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결단하게 된 카우만에게도 깊은 감명을 가져다 주었다. 따라서 한국성결교회 신학은 19세기 말 웨슬리 신학의 맥락에 선 복음주의적인 신학의 전통을 가진 만국성결연맹과 기도동맹, 그리고 그리스도인과 선교사동맹 등의 미국 성결운동이 동양선교회를 통해 반영되고 전수된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Ⅳ. 동양선교회(OMS)의 태동과 발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성령의 역사가 거세게 일어나던 해인 1907년 조선 땅 한복판인 경성에서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이란 간판을 걸고 순복음(純福音)이라 불리운 사중복음을 전함으로써 이 땅에 한국성결교회가 창립되었다. 자생적 개척으로 시작된 한국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 약칭 OMS)가 동양선교를 위해 설립한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한 정빈과 김상준 두 전도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따라서 초기 한국성결교회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선교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 1900년 전후 일본교회의 상황

개신교보다 일찍 천주교는 사비에르(Frencis Xavier, 1506-1552)에 의해 1549년 일본에 상륙하였고, 1612년 현지 통치자들(native rulers)에 의해 박해를 받을 때에는 상당한 지역에 걸쳐서 포교에 성공한 결과를 갖게 되었다. 개신교가 일본에서 처음 시작한 것은 미·일 조약이 맺어진 1858년부터 비롯된다. 사와 마사히코(澤正彦)은 이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1854년에 일본은 250년간의 쇄국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미국과 화친조약을 체결하였으며, 1858년에는 해리스(Harris)가 방문해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 조약에는, “일본에 있는 미국인 스스로가 그 나라의 종교를 믿고, 예배당(교회)을 거류지에 건립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일본인에게는 기독교가 종래와 같이 금지되어 있으나나가사키에서의 후미에(踏)는 앞으로 폐지한다고 통고되었다. 이와 같이 일본의 개국과 함께 일본에서의 기독교 예배의 길이 처음으로 열렸다.“

따라서 일본에서의 개신교 출발점은 일본이 250년간 쇄국정책을 풀고 개화정책을 밟은 1850년대 에도(江戸)말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심프슨이 작사, 작곡한 많은 찬송가 중의 하나인 4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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