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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표 목사, ‘호남 최초의 전킨 선교사’ 연재(11)군산선교의 열매들
  • 서종표 목사
  • 승인 2021.09.30 17:58
  • 호수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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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킨 선교사(1865년 12월 13일-1908년 1월 2일)

열정적으로 군산선교를 감당한 전킨은 1900년 5월 안식년을 맞이하여 군산을 떠난다. 군산에 정착한 지 꼭 4년 1개월 만의 일이었다. 군산교회 성도들은 잠깐이지만 전킨과의 이별을 슬퍼한다. 눈물로 진행된 송별예배에서 얼마나 슬퍼하였는지 함께 사역하던 불 선교사는 그들이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만큼 군산교회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고 전심을 다해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동생이 거주하는 켄자스 시티에 잠깐 머물게 된 전킨은 그 짧은 시간에도 그 곳 교회를 다니면서 가족과 함께 한국 선교 보고를 하게 된다.

그 후 고향인 버지니아 크리스천버그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집중적으로 한국 선교 보고를 하면서 후원을 요청한다. 의료선교가 확장되어 현대식 병원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모금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안식년의 선교 보고 및 후원 활동으로 인하여서 훗날(1907년) 군산 예수병원(Atkinson Memorial Hospital)의 건축 자금을 후원받게 된다.

전킨에게 선교의 큰 영향을 주었던 언더우드가 안식년을 맞이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과 비전을 주었던 것처럼, 전킨 역시 안식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니라 한국 선교의 감동을 전하였으며 안식년의 휴식 기간 속에서도 한국 선교를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전킨과 그의 가족은 1년 조금 넘는 안식년의 휴식을 뒤로 하고 1901년 11월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 그리고 군산에서의 제2기 사역을 된다.

군산에서의 제2기 사역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전킨을 군산교회 군인들은 열렬히 환영한다. 증기선을 타고 군산으로 돌아오는 전킨을 맞이하기 위하여 16마일, 30마일을 걸어온 성도들이 두 손 들고 그를 맞이했다. 그들을 보며, 몇 년 동안 전킨의 자녀인 에드워드와 윌리엄을 돌보았던 보모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그만큼 군산교회 교인들은 전킨 가족을 사랑했었다.

이러한 모습은 6년 전 처음 군산에 발을 내딛었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그때는 미지를 향한 두려움과 선교사역에 대한 기대였다면 지금은 사역을 향한 확신과 설렘이 가득했다.

도착하자마자 1901년 12월 자신의 집에서 열릴 제 10회 남장로교 한국 선교부 연례회의를 준비하였는데, 주력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맞이하면서 회의가 연기되었다. 선교사들의 안식년 부재로 인하여서 군산 선교부는 전체적으로 느슨해졌다.

안식년을 맞이하고 돌아오는 사이 드루는 질병과 과로로 인하여 쓰러지게 되고, 선교부는 그를 강제 귀국시킨다. 열정적으로 의료사역을 감당하던 드루는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안타깝게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그는 아쉽게도 선교를 멈추고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지만 그곳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하게 된다.

1902년 많은 사람들이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드루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도산 안창호 부부를 만나게 된다. 드루는 한국과의 인연을 기억하며 안창호가 미국에서 정착할 때 그들을 안내하며 통역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후 1926년에 드루 의료선교사는 네 명의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전킨과 함께 군산 선교를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영적인 동지가 떠난 것이었다.

게다가 전킨이 안식년에서 돌아왔을 때, 1백여 명 이상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한 명의 형제들은 전킨이 없는 사이 돌아가면서 설교하고 교인들을 돌보았다. 전킨은 그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세례받기 위하여 준비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에 전킨은 감사하며 이들에게 하루에 한 명당 한 시간씩 8일 동안 세례 문답을 진행했다. 안식년 동안 상황이 악화된 것 같았지만 전킨이 뿌린 복음의 씨앗들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군산선교부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만자산 교회(현 지경교회)는, 리더인 최홍서의 헌신과 사역을 통하여 기근이 들고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예배당을 헌당하게 된다. 그곳을 섬겼던 최홍서를 전킨은 이렇게 평가한다.

훗날 장로로 피택된 최홍서 씨는 군산 복음화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된다. 다시금 군산에서 선교 사역이 활발해진다. 1902년에는 77명이 세례를 받게 된다. 또한 드루의 후임으로 온 알렉산더(A. J. Alexander)와 다니엘(T.A.Daniel), 케슬러(Ethel Easter Kestler)가 의료 선교를 감당하게 되고 궁멀에 세워진 군산예수병원 역시 부흥하게 된다.

서종표 목사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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