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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앵플라맹스(inframince) 사도행전 3:1~10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9.02 14:38
  • 호수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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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배 목사  (정릉성결교회)

여러분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당연히 한 날의 삶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리시겠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스마트 폰을 찾는다고 합니다. 스마트 폰 알람에 맞춰 일어나서 하루 종일 스마트 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고 생활을 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스마트 폰 ‘알람’을 맞추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성균관대학교 최재봉 교수는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스마트 폰이 ‘뇌’이고 ‘손’인 신인류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에서 발견한 신박한 단어가 바로 ‘앵프라맹스(inframince)’입니다. ‘아래’를 뜻하는 ‘앵프라(infra)’와 ‘얇다’는 뜻의 ‘맹스(mince)’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차이’를 뜻합니다. 일종의 독창성, 차별성이라도 할 수 있는 아주 디테일한 차이가 결국은 급격한 변화의 시대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펜데믹은 분주했던 우리의 일상을 멈추게 하면서 동시에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그 변화의 끝이 어디를 향할지를 가늠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의 전반에 미세하지만 결정적인 조정과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적이고 세밀한 조정과 변화의 노력은 코로나19로 흔들리고 있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에 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직후 사도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겪었을 급격한 변화와 세상으로부터의 압박은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펜데믹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엄청난 능력으로 세상의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힘이 규모가 아니라 능력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일이 있었던 이후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아주 미세하지만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굉장히 적극적이고 역동적이 되었습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위협적이었지만, 날마다 모이기에 힘쓰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기도하며 떡을 떼고 교제하기에 힘썼습니다. 본문에 드러난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을 찾아 기도하는 일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되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이’를 일으킨 기적도 성전에 기도하러 나가던 중에 일어났습니다. 성도의 삶의 기적은 언제나 신앙의 열심을 통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코로나 펜데믹은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왔던 신앙생활을 제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간절하게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고, 다양한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모든 장소가 예배의 자리, 기도의 골방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전보다 더 온전한 예배자로 살기 위한 창조적이고 적극적이며 세심하고 디테일한 변화와 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가 하면 베드로와 요한은 동전 하나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애처롭게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단호하게 명령했습니다. 그는 즉시 일어나 걷고 뛰며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그 이름의 능력으로 살기 위해서는 은연중에라도 지금껏 붙들고 있었던 은과 금을 내려놓고, 예수 이름만 붙들고 사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껏 무수한 역사의 변화 속에서도 예수 그 이름의 약속과 능력은 결코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펜데믹을 통한 급격한 변화와 불안정한 일상은 우리가 지금껏 무엇을 붙들고,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영혼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이야말로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신앙의 본질을 향해 우리의 방향을 세심하게 조정해야 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돌이키면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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