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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82)명옥헌 원림 배롱나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9.02 11:19
  • 호수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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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매화는 마디 곧은 여인 /이화梨花는 재주 있는 여인 /국화는 재주 있는 여인으로 문장에 뛰어난 자. 수선화는 시사詩詞에 능한 여인, 말리화, 재스민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 계집종/목부용木芙蓉은 중년의 시비詩婢이다. 다만 난초는 이름 있는 가문에서 생장하여 사화詞畵를 좋아 하고 맑고 시원한데에 마음을 붙이며 음악에 마음을 쏟는 절대 미인이 된다>

청언소품에 나오는 글이다. 열정 있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은 여성에게도 꽃에게도 서로를 격하시키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옛날 사람이 적은 글이니..... 맑고 시원한 난초는 언감생심이고 국화 수선화 같은 여인이 되고 싶으나 그 역시 감히...그런데 부용화는 괜찮네. 중년의 시비라니....부용화는 풀처럼 보이나 관목이다. 여름에 시원스레 피어나는 모습이 시를 아는 것 같기도 하다. 나무 그늘에 살짝 피어나더니 어느 순간 고개를 숙여서 婢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배롱나무는 어떨까, 배롱나무는 불리는 이름이 많다. 목백일홍 백일홍 간지럼 나무 만당홍, 해당수, 양양수, 중국에서는 자미화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양귀비가 사는 성 이름이 자미성이었다. 아름다운 양귀비처럼 아름다워서 생겨난 이름. 백일홍이란 이름은 백일동안 피는 꽃이어서 지어졌다.

벼가 패기 시작하면 목 백일홍은 피어나기 시작해서 벼가 익어가는 동안 계속 피어난다. 설마, 한 꽃이 백일동안 피어나겠는가. 핀 꽃은 시들고 꽃망울들이 다시 맺어지는 것이다. 즉 원추상의 꽃차례를 이루며 차례로 피어난다. 배롱나무 가지의 선은 참으로 자연스럽게 구불거린다. 직선 물렀거라, 외치듯 부드럽게 휘며 자라난다. 또한 그 표면은 매끄러워 잡다함을 품지 않는다. 원숭이가 미끄러질 정도여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하고 실제 꽃가지가 섬세해서 살짝 만지면 저 위 꽃가지가 흔들거린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는데 속설이긴 하지만 배롱나무를 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더운 여름에 땀하나 없이 환하게 피어나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손질 잘 된 모시옷을 잘 차려입은 선비같다. 시원스러운 성품에 화려한 태를 지니고 긴 시간 고요히 익어가는 벼를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비.

혹시 이황과 기대승도 저런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을까,

"처음 만나면서부터 견문이 좁은 제가 박식한 그대에게 도움받은 것이 많습니다."

26살 차이가 나는 이황이 편지를 했고

"평생을 우러르며 그리워했는데 함께 논하고픈 생각이 구름처럼 쌓이고 말았습니다."

벼슬 말단이던 기대승이 답을 보냈다. 그들의 편지는 이황이 세상을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황과 기대승의 서간을 묶은 책을 읽었는데 서로를 향하여 내비치는 감정들은 애틋하기 이를 데 없어 마치 정인처럼 여겨졌다. 나이 차이와 계급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의 본산은 서로의 학문이었다.

명옥헌 원림에 서서 계시는 목백일홍들은 정말 선비 같았다. 무지렁이인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곳엘 갔는데 자그마한 연못에 반영을 그린 채 나무는 그저 맑고 그저 시원스레 그저 고요했다.

원림은 집에서 조금 먼 곳에 숲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두고 즉 인공적인 가미를 하지 않은 채 집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일본처럼 아기자기 손을 대는 것도 아니고 중국처럼 괴석을 가져다가 기이한 자태를 뽐내는 게 아니라 자연을 그대로 차경한다. 소박하고 거친 듯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우아한 형태의 정원이다. 그저 모든 것을 흐르는 대로 두고 물길 흐르는 곳을 조금 깊이 파주는 정도로 물의 정취를 담는다.

명옥헌은 제자 오기석을 사랑하는 송시열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정자지만 정자 안에 방을 만들어 구들도 있고 굴뚝도 있다. 거할 수 있게 만든 별서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보았다.

같은 글을 읽어도 그 높낮이는 현저하다. 좋은 책이라면 그 품새가 열자 백자일 것이다. 얇은 사람이라면 겨우 한자나 읽고 읽었다 할 것이고 깊은 사람이라면 깊이를 모르겠다고 할 것이다. 나처럼 일천한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수날....고요히 책을 읽는다면 깊이를 모르겠어...알 수 없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롱꽃 가득 피어난 원림, .명옥헌 원림을 가기 위해 차에서 내려 걸었는데 동네 고샅길 살짝 돌아서니 하늘 아래 꽃지붕이 보였다. 세상을 밝고 환하게 비춰 주는 듯 백일홍 꽃은 여름의 등롱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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