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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창문 칼럼(64)전라도 최초 선교사, 전킨 월리엄 맥클리어리(전위렴)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1.08.21 20:02
  • 호수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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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강대국들의 식민지 침략이 강세를 이루는 시기로서 세계는 국수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미국 남장로교단에서는 조선에 루이스 테이트(Lewis B. Tate), 윌리엄 전킨, 메리 레이번(Mary Leyburn, 윌리엄 전킨의 부인), 팻시 볼링(Patsy Bolling, 윌리암 레이놀즈 부인), 리니 데이비스(Linnie Davis), 윌리엄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 매티 테이트(Mattie Tate, 루이스 테이트의 여동생)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선교하였지만, 전국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선교사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였던 언더우드가 1891년에 안식년을 맞이하여 미국으로 돌아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조선에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주장하였고 전킨을 비롯한 6명의 친구들은 1892년에 남장로교단의 선교부에서 조선으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

1861년 12월 21일 미국 버지니아주 버그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전킨 선교사는 워싱턴앤리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고 1889년에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여 전문 사역자가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 전역을 다니며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에 큰 보람을 느꼈다.

그는 6명의 선교사와 함께 1892년 11월 3일에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10개월 동안의 언어 공부와 문화를 익히는 훈련을 받았다. 당시에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의하여 1893년 9월에 남장로교 선교 영역인 호남지방을 동료선교사들과 함께 답사하였다. 서울이 아닌 전라도 지방으로 답사를 떠난 전킨 일행은 폭우와 숯불 중독, 족통, 모기 등, 우리나라 지형적인 특성과 낙후된 의료시설 그리고 생활 문화가 열악하기에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선교사 일행은 제물포항을 거쳐 서울에서 선교 준비를 마치 후 1896년에 남장로교 군산지부를 세우기 위해 군산진항 포구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수덕산에 위치한 초가집 두 채를 매입하고 선교사 사택과 교회로 수리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전킨의 사역을 세 종류로 구분하여 선교하였다. 첫째는 교육선교를 하였다. 우리나라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여 문맹률이 높아 글을 읽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전킨과 메리 레이번을 중심으로 영명학교를 세우고 전킨은 남자아이를 모아서 기본적인 학교 교육을 시켰다. 레이번은 여자를 모집하여 한글을 가르치고 영어와 직업을 도모할 수 있는 재봉틀 기술을 습득하게 하였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통하여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여성의 생리와 임신에 관한 기본적인 교육도 시켰다. 근대교육을 받은 영명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3.1운동의 확산되었고 군산에는 3.5 독립만세운동이 펼쳐졌다.

둘째는 의료선교를 하였다. 백성들은 빈곤으로 삶에 고통이 깊어만 가고 열악한 의료시설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여 생명을 잃는 상황이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었다. 이러한 슬픔이 지속되고 있는 시기에 드류(Adamer D. Drew, 위대모)선교사를 중심으로 병원을 설립하여 국민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호남 최초로 군산예수병원(구암병원)이 세워지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욱 발전해 갔다.

셋째는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전킨 선교사는 군산과 전주, 옥수, 익산, 김제 등을 순회하면서 궁말교회(구암교회), 개복교회, 군산교회, 만자산교회(지경교회), 전주 서문밖교회를 중심으로 6개 교회를 더 설립하였고 고아원과 신흥학교를 세워 근대화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 밖에 여러 교회를 설립하였고 그는 건강을 돌보지 않고 열정을 다하여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심정으로 강력한 복음을 전했다. 1896년에는 호남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였던 송영도, 김봉래 두 사람이 최초의 세례교인이 되었다. 전킨은 28세에 선교사로 입국하여 교육과 의료, 교회를 세우며 사회복지 시설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소중한 사역을 하였다. 그를 통하여 씨앗이 뿌려지고 1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군산지역에 600여 개의 교회와 10만 성도로 성장한 복음화의 열매를 얻는 축복을 받았다.

이처럼 전킨 선교사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소명을 받아 조선의 땅에 발을 딛고 43세에 15년의 짧은 세월 동안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1907년 12월 급성 폐렴의 악화로 다음해 1월 2일에 하나님 품으로 안겨 영원한 천국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는 호남선교의 초석을 마련하고 많은 열매를 맺었는데, 그의 교육과 말씀을 듣고 훈련을 받은 제자들이 그의 업적을 기념하여 전주 기전여학교를 세워 그의 사역을 이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 어떠한 삶을 펼쳐 가는 것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헌신의 삶으로 맺은 열매는 120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의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한다.

최 선 박사(Ph.D., Th.D.),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OCU)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45분 ‘은혜의 단비’ 칼럼니스트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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