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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81)<크레센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8.18 14:23
  • 호수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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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서동시집오케스트라 West-Eastern Divan Orchestra>의 베토벤 9번을 듣고 있다. 화면을 보며 누가 팔레스타인이고 누가 유대인인지 살펴보지만, 알 수 없다. 그냥 음악에 빠져서 음악으로 들어간 음악인들이 있을 뿐이다. “자신을 알고 다른 사람을 아는 이라면 알게 되리라. 동방과 서방이 더는 나누어지지 않음을” 괴테의 시를 담은 서동시집(우리라면 동서시집이라고 명명했을 것이다)은 괴테가 이란의 시인 하피즈의 시를 읽고 그의 시에 반해서 펴낸 시집이다. 그런 의미에 착안해서 유대인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된 독일 바이마르에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처음 결성했다. 지금도 여전히 아랍인 40% 유대인 40% 유럽인 20%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크레센도>는 극영화이지만 이런 팩트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개봉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꼭 봐야 할 책이나 영화라면 그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바렌보임 역할을 하는 ‘에두아르트’가 토니 에드만의 페테르 시모니슈에크이란 것을 기록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 사람이 이 사람이라고? 눈썰미도, 이름 외우는 재주도 없는 이즈음의 내게 위로가 되는 문장을 한 줄 적는다. 그러니 그는 진짜 배우다. 사람들은 쉬 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갔을 때 팔레스타인 지역에 가서 식사한 적이 있다. 양고기를 맛있게 하는 집이라고 했다. 살짝 경계만 넘어섰는데도 느낌이 확 달랐다. 동네가 달랐고 분위기가 달랐다. 이스라엘이 평범한 도시라면 팔레스타인 지역은 뭔가 응축되고 오랜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바로 이웃처럼 연해 있는데도 그들의 삶은 현저하게 달랐다. 오랜 시간 배우고 느껴온 관습적 사유뿐 아니라 여전히 첨예한 대립각을 펼친 채 전쟁 가운데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해, 평화 콘서트가 기획된다. 오디션을 거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뽑는다. 야만의 역사를 어린 청춘들은 자신의 음악으로 새롭게 써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 역시 상대방의 나라에 대해 깊은 반감이 있지만, 점차 음악 속에서 융화된다.

어느 나라의 누가 아니라, 연주하는 음악인이 된다. 점이 선이 되듯이 그렇게 점 하나를 그들은 찍는다. 팩트를 알아선지 진행되는 스토리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그 아쉬움을 익숙한 음악들이 충분히 채워줬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남티롤 풍경이 펼쳐진다.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쨍한 풍경이다. 눈부신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확장 시킨다. 비록 화면 속에서 펼쳐지지만 나는 그 순간 그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그 아름다운 풍광 속을 달린다. 그러나 평화콘서트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한 소년의 죽음 때문이다. 갑자기한 죽음에 의한 슬픔은 참혹하다. 결혼식 뒤풀이를 한다고 차를 타고 다니며 즐겁게 외치던 소년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며 고통스럽게 외치고 다닌다. 그들은 볼차노 공항에서 헤어진다.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다. 이스라엘 바이얼린 주자가 라벨의 볼레로를 시작한다. 양파를 문지르며 연습을 하던 팔레스타인의 바이얼니스트가 함께 연주하기 시작하고.... 볼레로는 계속 조금씩 크레센토를 향하여 나아가는 음악이다. 비록 관중도 없고 연주회장도 아닌 비행장에서 연주되는 곡이지만 그래서 더 묵직하다. 크레센도를 더욱 희망적으로 보이게 하는 유리벽도 유심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갑자기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했다. “정체성이란 고정된 장소나 변치 않는 물건이 아니라 일종의 흐름, 흘러가는 물줄기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함께 보유한 첫 사람, 올해 만해평화대상의 수상자로 결정된 바렌보임은 말했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 얼굴은 그 시대를 향하고 있고 다른 한 얼굴은 영원을 향하고 있죠.”

남과 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대를 향한 예술의 몸짓처럼 여겨지는 생각거리 많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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