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   (본지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잘 찾으시려나 모르겠어요. 찾아만 오신다면 아주 좋으실 텐데. 그 찻집 의자가 참 좋거든요. 상수리나무로 만든 의자도 있지만 전 소나무 의자가 더 좋아요. 우선 향기가 그윽하거든요. 솔향은 침엽수 아니랄까 봐 향기가 직선이에요. 둥글둥글하지 않죠. 파박 가느다란 모습으로 쏘는 듯이 다가와요. 그러니 복잡하던 머릿속이 가라앉기도 해요. 뭐든 선명한 것들이 치고 들어오면 나른한 것들은 숨을 죽이곤 하지요. 의자만 좋은 게 아니라 전망도 아주 끝내주는 집이에요. 여늬 찻집처럼 창문 앞만 전망이 좋은 게 아니라 사통팔달이죠.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오기도 해요. 남산도 보인다니까요. 가시거리가 좋은 날이면 서해 바다……. 인천대교……. 인천공항에 들고나는 비행기도 보여요. 잠자리보다 더 작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 찻집에 가기 전 이 시 하나 읽고 가야겠어요. 그 찻집에서 읽으면 아주 좋을 시 같아서요. 무엇보다 요즈음 분꽃 피어나는 시간이잖아요.

분꽃이 피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한 바 없이 /사랑을 받듯 전혀 /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 뜰에 나와서 /저녁을 밝히고 /나에게 이 저녁을 이해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이 세상을 보여주는 건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 /그 悲哀보다도 화사히 /분꽃은 피어서 꽃 속을 걸어나오는 이 있다 //저물면서 오는 이 있다//장석남

분꽃 피면 이 시가 생각나요. 분꽃이 저녁을 밝히고 세상을 이해시킨다는……. 나처럼 세상을 잘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분꽃을 보며 하염없이 서 있고 싶고 어느 땐 분꽃의 목을 흔들고 싶어요. 날 이해시켜,. 빨리.....아마 시인도 알았겠죠. 이해 못 하더라도 분꽃의 목을 흔들지는 못할 거라는, 그래서 담대하게 써놓고 아마 씨익 웃었을 것 같아요. 사실 꽃이 핀다는 것은 그냥 한 귀절 만으로도 시가 돼요. 분꽃이 피었다. 진달래 핀다. 장미 피어났다. 백합 향기 가득하네, 그렇죠. 꽃핌에 무슨 군더더기가 필요하겠어요. 잠깐 멈출 수만 있다면 세상은 시로 가득하죠. 멈추질 못해서 시를 읽어내질 못하는 거죠. 분꽃은 해가 저물 무렵 피어나는데, 저물면서 오는데, 시인은 그리하여 분꽃에서 비애를 찾았을 거예요. 모노 노 아와레....탐미적이면서도 니힐한 이 비애의 정조가 일본인의 미의식이라고 하니 비애가 사람의 근원적 성향일 수 있을 거 라는 시인의 추론도 그다지 틀릴 것 같지는 않아요.

팔월은 나무꽃……. 꽃처럼 보이는 모감주 열매나……. 회화나무 뒷자태....누리장나무 꽃 조금 보일 뿐 꽃이 드문 시절이죠. 대신 가만히 있는 나무를 가볍게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이 꽃처럼 다가오곤 해요. 한 줄기 바람 두 줄기 바람. 무람없이, 마치 내가 나뭇잎이라도 되듯이 꽃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오죠. 특히 그 찻집에 앉으면 말이죠. 바람의 집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찻집은 혹시 하늘의 세컨 하우스 인지도 모르겠어요. 하도 하늘로 가득 차서요. 어젠 사람이 없더라구요. 아 그 찻집 들어서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몇 있었지요만, 세상에 그렇게 좋은 찻집을 말이죠. 주인장 눈치를 슬몃 보았더니 장사와는 상관없다는 듯 느긋한 표정으로 바람만 보고 있더군요. 그 찻집 소나무 그늘에 앉아 얼음 동동 띄운 커피를 마시는데요. 당연히 달달하죠. 얼음 커피는 달아야 해요. 차갑고 향기로운 커피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기며 살짝 눈을 감으면 그때 음악이 들려오죠. 바람은 마에스트로 나뭇가지와 잎들은 오케스트라 주자들!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음악이 들려와요.

그 찻집은 우리 동네에 있어요. 아, 조금, 아주 약간, 걸으시긴 해야 해요. 땀도 좀 나실 거에요. 여름이 가기 전, 매미 소리 사라지기 전, 한번 꼭 찾아가 보시길요. 여기 찻집 주소 올립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북한산 삼천리골 사모바위 옆 소나무 그늘, 그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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