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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50)오경의 주요 내용: 구속사의 서론적 동기
  • 최종진 박사(구약학)
  • 승인 2021.07.29 14:24
  • 호수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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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학대학교 제13대 총장, 동 대학교 명예교수

둘째로, 전통적 기독교 해석으로 뱀이라는 동물 자체 이상의 존재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뱀 이상의 존재가 배후에서 작용했다고 봐서 뱀은 자로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무도덕한 피조물인 뱀이 도덕적 성격, 종교적 성격을 가진 말을 했다는 것이다. 뱀의 배후에는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악한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악한 생각은 사실상 뱀의 입을 통해서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다(요 8:44, 계 12:9, 20:2).

셋째로, 신화적 해석은 뱀을 어떤 약속의 존재가 뱀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배경과 조화가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창세기 타락 이야기이다. 뱀이 말한다는 것은 신화 이전의 주제요 우화적 요소일 뿐인데, 창세기 기사를 그렇게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되는 근원적이며 중요한 인간 궁극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에덴동산에 들어와 그 피조물 중에 뱀을 도구로 하여 인간에게 접근하여 명령 위반의 타락을 꾀하는 유혹을 한다. 그것은 바로 구약과 신약성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악한 세력인 사탄 마귀의 유혹과 전략이었다. 뱀은 사탄에게 적용된 단순한 상징적인 용어였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의 긍정적 계약 관계에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② 사탄의 교활한 술책

a) 하나님 말씀(성서 영감)에 대한 의문: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냐”(3:1). 여기서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실과를 하나님이 말씀에 혼돈을 가져오게 하여 미혹한다. 여자의 행복에 대한 종교적 관심을 이야기한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고, 오늘날 사이비 종파, 이단도 꼭 성서를 가지고 미혹한다.

b) 하나님 말씀의 변조: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3:4) 사탄이 전략을 바꾸어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부정하고 나선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정반대의 의견인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하여 절대적 권위 개념을 부정하고 정죄한다. 하나님과의 긍정적 관계성에 정반대되는 사상을 집어넣어 여인의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게 했다. 의심은 불신과 무지에서 싹트는 정신적, 영적 질병이다.

c) 거짓 진술(거짓 복음): “너희가 하나님같이 되리라”(3:5). 여기서 사탄은 하나님같이 되는 길이 인간에게 열리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구약성서에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금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경쟁자를 원치 아니하시고, 아니 실제로 경쟁자가 있을 수도 없다. 이것은 바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지식을 향한 충동에서의 유혹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고 이해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이요 타락이다.

d) 인간 내부의 충동: 귀로 들었던 말이 눈으로 봄으로 인간 내부에 충동을 만든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육신의 정욕) 보암직도 하고(안목의 정욕)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이생의 자랑)” 했다(3:6).

이 본문에 의하면, 바로 선과 악의 지식에 대한 지식 추구의 자기 한계선을 넘어가 버리는 영역으로 사탄은 여인을 끌고 간다. 그래서 여인은 슬기롭게 되기 위해 하나님과 맺은 자신의 신뢰 관계 밖으로 나가는 행동으로 빠지게 된다. 인간이 자기의 한계선을 넘어섰을 때 하나님에게 도전이 되고, 그것은 인간 자신의 터전을 상실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사탄의 속임수요 술책이었고, 인류는 계속 속아왔다.

b. 인간의 실책(타락의 과정)

① 일반 명령화: 창세기 2장에서 주어진 명령은 모두 2인칭 단수 “네가”로 개인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3장에 나타나는 사탄과의 대화에 나오는 것은 2인칭 복수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로 바꿔서 일반 명령으로 만들어 버린다. 금지 명령의 개인적 책임을 공동의 책임으로 확산시켜서 약화해 버린다. 오늘날도 인간은 자기 개인적 죄를 자각하기보다 인간 모두의 죄성, 죄의 보편성에서 위안받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노출하길 주저한다.

② 말씀에 첨가: “먹지 말라”(2:17) 했는데 거기에 “만지지도 말라”(3:3)는 말을 부가시킨다. 이 대답은 하나님의 엄격하심에 대한 반항하는 어투이다. “만진다”는 말은 손을 댄다는 것보다 그 이상의 의미 즉, 과실을 소모하거나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 있다.

인간이 죄를 범할 때는 양심의 소리나, 하나님 말씀에 자기의 해석과 변명으로 정당화시킨다.

③ 말씀의 삭감: “동산 나무의 각종 나무의 실과”를 그저 “동산 나무의 실과”로 “각종 혹은 모든”이란 말을 빼버림으로써 풍성함에 대한 불만을 암시하면서 금지 명령에의 무관심과 자유 명령과 금지 명령의 혼돈을 가져온다. 인간이 죄를 범할 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꼭 기억하고 알아야 할 말씀을 외면해 버리는 수가 많다.

최종진 박사(구약학)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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